[기고]울부심, 울산이 좋다
젊은 시절에 사업을 한다고 경북 영주라는 도시에 잠시 살았었다. 인구 10만을 웃도는 영주는 전형적인 농촌 도시였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논과 밭, 산 뿐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농업이 생업의 전부나 다름없는 도시 구조였다. 변변한 공장이랄 것도 없었다. 그래도 사통팔달의 철도망 덕분에 교통 요충지로 대접을 받았다. 강원도 태백과 정선, 경북 문경 등의 탄광과 연결되는 철도는 화물운송의 대동맥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석탄의 소비와 생산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지금은 개점휴업 상태나 마찬가지다. 공장이 없어 좋은 점은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이라는 자연환경이다.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될 수 있다면 좋은 도시임이 분명하다.
그때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는 아직도 왕래하면서 친분을 유지한다. 일 년에 서너 번씩 울산과 영주를 오가며 친목을 나누는 좋은 인연의 사람들이다. 영주의 지인들이 울산에 오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풍부한 산업기반이다.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 익히 잘 알려진 기업과 공장은 물론 산업수도라는 명성에 걸맞게 울산이 만들지 못하는 제품과 업종을 찾는 게 어려울 정도라는 현실이다. 알루미늄 압연 회사가 입주하기 전까지는 담배를 제조하는 연초제조창이 가장 큰 공장이었던 영주 처지에선 울산이 마냥 부러울 수밖에 없다. 현대자동차나 현대중공업 등의 단일공장 직원이 수만 명인 것과 비교하면 기껏 수백 명에 불과한 공장은 초라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공장과 기업 유치를 위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하지만 실적은 기대만큼 신통치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한해 수조 원씩 투자를 유치하고, 기업이 몰려드는 울산이 솔직히 부럽다는 넋두리를 내뱉는다.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던 인구 10만이 무너진 이후엔 지역 소멸의 위기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울산보다 물질적으론 빈곤하지만, 정신적으론 풍요롭다는 것을 영주의 장점으로 강변했다. 유교의 성지인 소수서원과 불교의 중심인 부석사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2018년 부석사에 이어 2019년에는 소수서원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는 점을 들었다. 부러운 한편으로 울산도 유서 깊은 역사 도시의 유물과 흔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일일이 꼽으면서 옥신각신 가벼운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울산은 천년 신라의 국제 무역항의 관문이자 배후도시로서 경주 못지않은 번성을 누렸다. 북구의 달천 철장이 철 문화를 이끌었고, 남구 개운포가 처용설화의 기원인 이유도 그렇고, 중구 반구동 유적지를 통해 울산이 해상제국을 꿈꾼 신라의 해상실크로드 중심이었다는 것으로 반박했다. 신라보다 더 오래된 역사 유물인 국보 반구대 암각화도 자랑했었다. 그럼에도 세계유산 등재에는 약간 밀린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 등이 있는 ‘반구천의 암각화’가 우리나라 17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것을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물질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울산은 정신적으로도 풍요로운 도시의 반열에 올라섰다.
때마침, 세계유산 등재가 확정된 이후 영주의 지인들이 울산을 방문했기에 한달음에 ‘반구천의 암각화’ 일대로 안내했다. 뉴스를 통해 소식을 들었다면서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이 보고 싶었다고 했다.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반구천의 암각화’ 주변의 풍광이 매우 좋았고, 특히,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등의 동물 문양과 활쏘기 등 선사 시대 조상들의 삶을 엿볼 수 있어 세계유산으로 손색이 없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세계유산을 가진 지역의 지인들이 세계유산을 품은 울산을 칭찬하니 더 뿌듯했고 자부심이 한껏 드높아졌다.
발걸음을 옮겨 십리대숲을 비롯하여 태화강 국가정원을 둘러봤고, 2028년에 울산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릴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산업기반이 풍부한 산업도시, 공기도 물도 맑고 공원과 정원이 즐비한 친환경도시, 그리고 세계유산을 가진 역사문화도시로 발전을 거듭하는 울산이 너무 부럽고, 울산 사람들은 울산이 참 좋겠다는 말을 쉼 없이 했다. 울산이 좋다는 말은 진심이기에 ‘울부심’을 가져도 될 것이다.
김종대 울산광역시 대외협력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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