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소영의 기후 2050]기후 뉴노멀시대, 도시 방재의 한계와 과제
이르게 시작된 한반도의 여름. 상하로 요동치던 폭염의 열기가 잠시 동서로 물러난 틈을 타, 북쪽에서 내려온 찬 공기가 남하해 격렬한 장마전선을 형성했다. 남쪽의 덥고 습한 공기와 격하게 충돌하며 쏟아진 ‘괴물 폭우’는 대한민국의 강우 기록을 다시 썼다.
경남 산청 시천면에는 793.5㎜, 합천 삼가면에는 699.0㎜의 폭우가 이틀 만에 쏟아졌고, 이는 1년 치 강우량에 해당한다. 강우의 강도 또한 과거와는 차원이 달랐다. 충남 서산에서는 한 시간 동안 114.9㎜의 비가 퍼부었고, 광주에는 하루에 426㎜가 내려 1939년 이래 최고 일일 강수량을 기록했다.
이처럼 ‘수백 년에 한 번’ 내릴 법한 비가 매년 여름 반복되는 현상은, 극한호우의 빈도가 실제로 증가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기상청이 지난 50년간 66개 지점의 강수량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시간당 50㎜ 이상의 극한호우 발생 횟수는 1974~1983년 연평균 7.8회였던 반면, 2014~2023년에는 18.9회로 무려 2.4배나 늘어났다. 지구 평균기온이 1.5도 상승하면서 대기 중 수증기량이 10%가량 증가했고, 이는 폭우 구름의 ‘성능’을 대폭 강화시켰다. 국립기상과학원과 APEC 기후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현 수준의 탄소 배출이 지속될 경우 2040~2060년 사이, 100년 빈도의 극한호우는 지금보다 46%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100년에 한 번’이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방재 시스템이 이러한 ‘기후 뉴노멀’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행 설계 기준은 하천은 50~100년 빈도, 배수펌프장은 20~30년 빈도의 강우를 기준으로 설계돼 있다. 대부분 방재시설은 시간당 80㎜ 강우 기준에 맞춰져 있어, 지금과 같은 폭우에 대처하기엔 구조적으로 한계가 뚜렷하다. 결국 방재 설계 기준을 극한 폭우에 맞춰 전면적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 시급하다.
비를 막을 수 없다면, 내린 비를 신속하게 빼낼 수 있는 도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대심도 빗물터널, 저류지, 우수배수관 등의 확충이 반드시 필요하며, 기존 공터·주차장 등의 유휴 공간을 비상시 배수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병행돼야 한다. 설계 기준을 단순히 보수적으로 상향하는 수준이 아니라, 과설계처럼 보이더라도 ‘충분한 여유 용량을 확보’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되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AI(인공지능)와 IoT(사물인터넷)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방재 시스템 구축이 요구된다. 강우량·수위 데이터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위험지역에 자동으로 경보와 제어가 이뤄지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다가올 ‘괴물폭우의 시대’에 우리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기술로 예측하고, 시설로 막고, 자연으로 완화하며, 사람이 대비하고, 제도로 지원하자.” 이제는 일상적으로 극한 호우에 대비하는 ‘상시 방재체계’를 갖추는 것이야말로 기후변화 시대의 생존 전략이자 미래 안전을 위한 최소 조건일 것이다.
맹소영 기상칼럼니스트·웨더커뮤니케이션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