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회계감독, 자본시장 신뢰의 시작점
2015년 61개국 중 60위, 2020년 63개국 중 46위, 그리고 2025년 69개국 중 60위.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발표한 대한민국의 회계투명성 순위이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표준감사시간제도와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도의 도입(2019년)도 미봉책에 불과했으며, 회계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 회복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가르치는 필자는 회계의 공공성과 신뢰를 다시 세우기 위한 구조적 변화가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회계는 평가와 책임을 위한 도구이다. 숫자로 경영 성과를 평가할 수 있어야 책임의 완수 여부를 가릴 수 있고, 이는 곧 합리적인 보상과 인사, 자원배분으로 이어진다. 더구나 자본시장은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본을 조달해 위험을 감수하는 기업에 기회를 제공하는 구조이므로 투자 판단의 출발점이 되는 회계정보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지 않으면 기능할 수 없다. 이러한 신뢰를 유지하고 회계정보의 질적 수준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제도만큼이나 그 집행을 담당하는 회계감독 기구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중요하다.
금융감독원 회계 본부에는 4개의 국에 101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회계 본부의 수장인 회계전문심의위원은 외부감사제도 운영, 회계감리 정책 결정, 회계기준 심의 등 회계감독의 집행과 조율을 총괄하는 핵심 임무를 수행한다. 전문심의위원 직위는 1982년 증권감독원 시절부터 줄곧 임원(부원장補급)으로 운영돼 왔으며, 금융감독원 체제로 전환된 이후에도 약 40년간 일관되게 임원 지위가 유지돼 왔다. 그러나 2023년 금융감독원의 집행간부 정원이 초과됐다는 감사원의 지적에 따라 전문심의위원은 임원에서 일반 직원(선임국장)으로 격하됐다. 이는 단지 직제 조정의 문제가 아니라, 회계감독 기능의 위상, 독립성 및 정책 조율 역량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위험으로 작용하고 있다.
회계전문심의위원의 지위를 임원급으로 복원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회계감독 집행 과정에서 국회,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한국공인회계사회 등과의 교섭과 협력을 위해서는 고위급 위상이 뒷받침돼야 한다. 둘째, 감리위원회 및 한국회계기준원 이사회 등 주요 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는 현행 구조는 고위공무원 또는 임원을 전제로 하고 있어 선임국장 신분은 제도적 정합성을 결여한다.
국제적으로도 회계감독 기능은 모두 기관장급 인사가 수행한다. 미국의 경우, SEC의 Chief Accountant가 회계감독의 최종 판단권한을 갖고 있으며, 회계법인 감독을 전담하는 PCAOB의 의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임기직 고위기관장이다. 영국도 기업통상부 장관이 직접 임명하는 FRC 의장이 회계 감독과 기준 설정을 주도한다. 이처럼 회계전문성에 기반한 독립성과 위상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국제적 표준임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현행 구조는 오히려 후퇴에 가깝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4년 7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정 의원은 금융감독원의 부원장보 정원을 기존 9명에서 10명으로 확대하고, 회계전문심의위원을 다시 임원으로 명시하는 내용의 ‘금융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는 단지 정원을 늘리는 행정적 조치를 넘어 회계감독 기능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회복하는 중요한 개선안이다.
최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조직개편을 둘러싼 논의가 정부 차원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를 중심으로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한 기능별 조직 재편이 검토되고 있으며, 일부 논의에서는 회계 감독 기능이 금융소비자보호처에 속하게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러나 회계감독 기능은 소비자보호와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른 전문적·기술적 영역으로, 별도의 기능과 위상, 인력 체계를 요구한다.
더구나 회계전문심의위원이 현재처럼 직원 신분에 머무를 경우, 감독 기구 내에서의 위상 약화는 불가피하며 정책 우선순위에서도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조직개편 논의와 별개로 회계전문심의위원의 임원 지위 복원은 회계감독 체계를 정상화하는 ‘작지만 본질적인 조치’다. 지금이야말로 회계감독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제도적으로 재정립해야 할 시점이다.
P.S. 태화강을 품은 신정동에서 나고 자란 이에게 ‘태화강’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아련한 추억입니다. 우정동 독서실을 다니며 태화교를 건너던 그 시절, 저녁노을이 깃든 강물 위로 흘러가던 소년의 꿈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김진욱 건국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