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제조AI 표준화’, 울산이 선도해야

2025-08-01     경상일보

“기술이 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면, 표준은 기술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오늘날의 기술패권 경쟁은 기술력 그 자체를 넘어, 누가 먼저 기술의 규칙을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이 본격화되면서, 이제는 기술보다 표준을 누가 선점하느냐가 산업의 주도권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제조 AI다. 제조 AI는 단순한 공정 자동화를 넘어, 공장 내 수많은 센서와 장비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하고 불량률을 예측하며, 설비 운영을 최적화하는 등 제조 현장의 두뇌 역할을 수행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 강력한 기술이 산업 전반에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확산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표준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데이터 형식, 알고리즘의 검증 절차, 시스템 간 연동 방식 등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기술 간 연결은 물론, 산업 간 융합도 불가능해진다.

현재 제조 AI의 글로벌 표준은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미국, 독일, 일본, 중국 등 주요국들이 자국의 기술과 산업 논리에 따라 저마다의 틀을 제시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적인 승자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곧, 지금 이 시기가 우리가 기술표준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결정적 기회, 이른바 ‘골든타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한 번 정해진 표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USB 포트, 5G 통신망, 전기차 충전방식 등도 모두 기술 경쟁이 아닌 표준 경쟁에서 이긴 자가 시장을 장악했던 대표적인 사례다.

제조 AI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기준을 만들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남이 만든 규칙에 우리 기술을 끼워 맞추는 수동적 위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 중요한 전환점에서 울산은 주목받아야 마땅하다.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 대한민국 제조업의 핵심 산업이 집결된 울산은, 최근 국내 최대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유치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는 단순한 인프라 확장이 아니라, 제조 AI 표준화를 실현할 수 있는 전략적 기반이자 국가 산업전환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특히 기술의 규칙을 직접 설계할 수 있는 시점에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것은, 울산에게 있어 산업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절호의 타이밍이다.

울산은 제조현장에서 나오는 방대한 실증 데이터를 기반으로, 세계 어느 도시보다 현실 기반의 알고리즘 개발과 성능 검증이 가능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는 곧, 제조 AI 표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자산이며, 기술주권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다.

표준화는 기술의 정답을 정하는 일이 아니라,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의 기준을 정의하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가 먼저 제조AI의 표준을 제안하고, 적용사례를 쌓아간다면, 국내 산업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도 우리의 룰(rule)을 따르게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표준 선점의 힘이자, 기술패권의 본질이다.

울산은 이 과업을 수행할 수 있는 최적지다. 제조현장과 AI 기술이 만나는 접점이 울산에 있고, 산업단지에서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양질의 데이터 역시 울산에 있다. 여기에 축적된 기술역량과 인프라를 결합한다면, 울산은 더 이상 기술을 따라가는 도시가 아니라, 기술의 규칙을 설계하고 산업의 질서를 재정의하는 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제조 AI의 표준화는 단순한 지역 전략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국가 전략이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우리는 또다시 외국의 기술 틀에 맞춰야 하는 수동적 위치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울산이 나선다면, 대한민국은 제조 AI 시대의 새로운 글로벌 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기술은 복제될 수 있지만, 표준은 복제되지 않는다. 그 표준을 누가 설계하느냐에 따라 향후 수십 년간의 산업 경쟁력이 결정된다. 지금이 그 기준을 정할 순간이다. 울산이 그 중심에 서야 한다.

이시은 미래사회과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