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덤으로 받은 한 달 윤유월, 직진 아닌 우회적 삶을
‘송홧(松花)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7.5조 3음보의 민요적 율격으로 선경후정(先景後情)의 전개 방식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고독과 기다림의 비애감’을 절제 있게 표현한 박목월의 시 ‘윤사월(閏四月)’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윤달(閏月)은 음력과 양력 사이에 서로 어긋나는 시간적 오차를 보정하기 위해 끼워 넣는 달이다. 올해는 7월25일부터 8월22일까지가 윤유월이다.
주지하다시피, 태양력에서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한 해로 삼는 반면, 음력은 달이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 기간을 한 달로 삼는다.
태음력에서 한 달은 약 29.53일로 1년이 354일 정도여서 365일인 양력과 10.88일 정도의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것이 누적되면 계절과 월력에 오차가 발생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약 2~3년마다 한 번씩, 좀 더 정확히는 19년에 일곱 번 정도 윤달을 두어서 균형을 맞춘다.
만약 윤달 제도가 없으면 음력을 사용하는 전통 풍속 행사에 많은 혼란이 발생하게 된다. 일례로 작년 추석은 9월17일이었는데 너무 일러서 벼도 수확하지 못하고 과일도 익지 않은 상태에서 조상님 차례를 모실 수밖에 없었다. 올해 한가위는 작년보다 11일쯤 이른 양력 9월6일이 될 것인데, 윤유월이 개입함으로써 적절히 10월6일이 된 것이다.
속설에 따르면 윤달에는 창업이나 결혼 등 큰일을 피하기도 하고, 묘를 이장하면 좋다는 긍정적 의미도 있으나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2422일로 4년마다 1일 정도의 여분이 발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양력 2월을 하루 더 추가하여 1년이 366일이 되는 해를 ‘윤년(閏年)’이라 한다.
예부터 민속 명절은 물론 어촌에서 사리나 조금 등 물때를 따질 때 음력을 사용하는 풍습이 있다. 하지, 동지, 처서 등 24절기는 태양력을 쓰지만, 추석, 설, 단오, 백중 등 농경사회의 세시풍속(歲時風俗)이나 달의 운행에 따른 차고 기욺 즉 삭망(朔望)은 음력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중국이나 베트남, 싱가포르 등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도 전통명절이나 종교행사는 태음력을 병행해서 사용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38년 만에 돌아온 윤유월, 공으로 얻은 한 달의 시간 속에 서 있다. 인생의 여백 같은 제13의 달, 바쁘고 고달픈 생활인의 삶에 휴식처럼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를 맞이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늘 직진을 강요받는다. 부모도, 교사도, 직장 상사도 언제나 빨리빨리, 곧게, 효율적으로 생활하기를 주문한다.
하지만 인생이란 고속도로보다 골목길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품는다. 잠시나마 직행의 삶으로부터 완급 조절, 덤으로 한 달을 더 사는 듯한 호사를 누려보자. 이쯤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직설적 삶을 제쳐두고 우회적이고 완곡하게 쉬어보는 여유를 즐겨 보자. 우회는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선택받은 사치다.
나무늘보가 평균 시속 0.24㎞, 1분에 4m를 움직인다고 하여 세상을 대강 사는 것이 아니다. 그의 전략은 늘 윤달을 살듯이 여유 있게, 서두르지 않고 나름대로 최고의 기량을 뽐내고 있는 것이다.
몇 월이 윤달인지 순서가 일정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천문연구원의 천체력에는 다음 윤유월이 돌아오는 해를 2044년과 2063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권영해 시인 울산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