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물보다 유산이 먼저” 암각화 보존, 말이 아닌 실행을

2025-08-04     경상일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 일주일 만에 사연댐 수면 아래로 침수된 ‘반구대 암각화’가 벌써 2주째 햇볕을 보지 못한 채 물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이 가운데 울산 지역에는 또다시 반갑지 않은 비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달 19일 집중호우로 사연댐에 수몰된 반구대 암각화는 현재(3일 기준) 사연댐 저수위 55m 이하에서 침수된 상태다.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물에 의해 반복적으로 침수되는 상황에서 완전한 해방을 위한 항구적인 보존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폭우가 빈번해진 현재, 암각화의 실효적인 보존 대책 마련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지난 1일 울산서 열린 국가유산청장 타운홀 미팅은 시민과 전문가, 행정이 머리를 맞댄 뜻깊은 자리였지만, 상황의 심각성에 비해 정부 대응은 선언적 단계에 머물렀다.

울산 시민단체들은 이 자리에서 “물보다 유산이 먼저”라는 원칙을 강조하며, 실질적인 암각화 보존을 위한 해법은 결국 사연댐 해체와 반구천의 재자연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정부가 2030년까지 추진 중인 수문 설치 방안보다 더 쎈 보존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기후 변화로 폭우와 수위 상승이 더욱 빈번해지고, 풍화·습기·녹조 등 복합적인 환경 위협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암각화의 현실을 고려한 시민단체의 제언이었다.

그러나 국가유산청은 이날 세계 유산의 체계적 보존 관리와 탁월한 보편적 가치 확산을 위해 전 세계인이 향유할 수 있는 반구천의 암각화 관람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라는 지원 방향에 대해 집중했다. 침수된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 현실과 추가 피해 방지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방안은 없었다. 울산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듣겠다면서 정작 암각화를 사연댐 물고문에서 끄집어낼 미봉책조차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반구천의 암각화’ 보존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타운홀 미팅에 물 관리의 핵심 주체인 환경부와 수자원공사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은 실망스럽다. 수문 설치냐, 댐 해체냐와 같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주체들이 논의의 자리에 없었다는 사실은 정부의 실행 의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국가유산청을 비롯해 관계 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공식 협의체를 조속히 가동해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세계인의 자산인 ‘반구천의 암각화’를 지키려면 ‘물 밖에서 건재한 유산’이 돼야 한다. 국가유산청은 “물보다 세계유산이 먼저”라는 선언이 구호에 머물지 않도록 즉각적이고 실효성 있는 보존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