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생각]사진, 모든 것을 추억하고 있을까
여름휴가가 한창이다. 비 소식으로 잠시 주춤하지만 연일 이어지는 무더위에 바닷가와 계곡, 도심의 골목길까지 휴가를 즐기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예전에는 필름 카메라로 아껴가며 사진을 찍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저장 용량이 허락하는 한 수백 장, 수천 장도 거뜬히 찍을 수 있다.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돌아오는 길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사진을 찍는다. 그날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기록하려는 듯하지만 과연 사진이 모든 추억을 그대로 담아줄까.
사진을 찍을 때 우리는 대부분 환하게 웃고자 한다. 표정이 어둡거나 행복해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찍곤 한다. 갑작스러운 비에 여행이 망쳐지는 듯할 때,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돌아가야 할 때, 관광지나 숙소가 기대와 달라 실망스러울 때처럼 비교적 덜 행복한 순간은 좀처럼 사진에 담기지 않는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본능적으로 가장 괜찮아 보이는 표정을 짓고, 배경과 구도를 신경 쓴다. 그 결과 사진은 그날의 불편함과 고생을 덮어두고 마치 여행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했던 것처럼 꾸며진다.
물론 이런 ‘편집된 기억’이 반드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힘들었던 기억보다 즐거웠던 장면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사진은 그 욕망을 충실히 돕는 증거가 된다. 오랜만에 사진을 꺼내 보며 “그때 정말 좋았어” 하고 웃는 순간, 사진은 현실보다 더 아름다운 기억을 만들어낸다. 여행의 힘들었던 순간은 금세 잊히고, 밝은 표정과 화창한 풍경만이 남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기록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더위에 지쳐 모든 것이 무기력해지는 순간, 의견 차이로 조금 어색한 공기가 감도는 순간, 예정에 없던 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작고 허름한 카페. 이런 순간을 기록한 사진들은 그때의 공기와 냄새, 기분까지 함께 담아준다. 완벽하지 않은 순간의 장면들이 오히려 더 오래, 더 진하게 마음속에 남기도 한다. 성능이 좋지 않은 필름 카메라로 찍은 흔들린 사진이나 스마트폰으로 급히 눌러 담은 흐릿한 이미지가 주는 생생함은 완벽한 구도의 사진이 줄 수 없는 감정을 건네기도 한다.
사진은 결국 기록이면서 해석이다. 우리는 보고 싶은 장면을 선택해 남기고, 나머지는 흘려보낸다. 그래서 사진첩 속 여행은 언제나 조금 더 반짝이고, 조금 더 행복하게 편집되어 있다. 물론 그것도 좋지만, 가끔은 의도적으로 꾸미지 않은 순간을 남겨보기를 권한다. 그 모든 것이 여행의 진짜 이야기일 수 있으므로.
휴가철이 막바지로 향하는 지금, 카메라를 든다면 ‘엽서 같은 장면’뿐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여행을 담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언젠가 그 사진을 펼쳐보며 우리는 웃음 속에 숨겨두었던 진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남은 사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살아있는 추억이 된다.
김지영 울산젊은사진가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