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2장 / 포르투갈의 바탈랴 수도원(25)

2025-08-07     차형석 기자
“말씀은 감사하오나 저같이 천한 자가 장군의 진영에 들어가서 싸운들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전장에서의 싸움은 시간과 장소, 상황에 따라서 거기에 맞게 변화무쌍하게 전개해야 하는데, 제가 그리한다면 장군 휘하의 부장들 눈 밖에 나서 내쳐지거나 죽는 게 고작이 아닐까 생각되옵니다.”

“네가 병서를 읽었더냐?”

“‘육도삼략’과 ‘오자병서’를 조금 읽었을 뿐입니다.”

“‘육도삼략’에 ‘오자병서’까지?”

“아직 깊은 뜻은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몇 번 반복해서 읽은 수준입니다. 저는 대왕이신 세종께서 ‘노비는 비록 천인이나 하늘이 낸 백성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열심히 살 것입니다.”

“네 지혜가 조정을 위해서 크게 쓰임 받을 날이 올 것이다. 그러려면 너는 정식으로 군대편제에 들어와서 활동을 해야 한다. 그래야 너에게도 길이 열린다.”

“양반인 의병장 김덕령 장군과 남해의 조선 수군을 이끌고 계시는 이순신 장군까지도 주상전하와 권신들의 눈 밖에 나서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조선의 장수들은 맹장(猛將)은 많으나 지장(智將)은 별로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소인의 앞에 계시는 장군님과 통제사 이순신 장군이나 김덕령 장군 정도가 지략을 갖춘 장군들이고, 나머지는 병법에 무지한 맹장들이라서 왜적들에게 제대로 대항 한 번 못한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지장(智將)인 김여울 장군께서 문경새재를 이용한 방어전을 건의했지만 맹장(猛將)이기는 하나 안하무인에 고집불통인 신립 장군이 받아들이지 않아서 조선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육군부대가 탄금대 전투에서 궤멸 수준의 참패를 당했고, 주상전하는 한성을 버리고 야밤에 의주로 몽진을 간 것을 장군께서도 아시잖습니까? 주상이나 조정 대신들이 맹장은 좋아하고 지장은 싫어하는데, 저 같은 사람이 출사를 한들 나라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홍의장군 곽재우는 천동의 말을 듣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상놈의 입에서 감히 권신이라는 소리가 나왔으니 즉석에서 목을 베는 것이 마땅하나 녀석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고, 자신이 진정하고 싶었던 말을 밖으로 내뱉은 것이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나라가 전란의 한가운데 있는데도 불구하고, 임금과 신하와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뜻을 모으지 못하는 작금의 현실이 그는 너무도 싫었다. 신반현의 창고곡식사건은 정말이지 죽을 때까지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학봉 김성일이나 박재사 등의 적극적인 구명활동이 없었다면 큰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어쩌면 심문과정에서의 매질을 이기지 못하고 벌써 불귀의 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무고로 자신을 치려 했던 간신배 합천군수 전현룡보다 경상감사 김수가 더 죽어야 할 자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