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의 생각의 窓]‘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

2025-08-13     경상일보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이 유대인으로서 나치 수용소의 참상을 겪은 후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이어 ‘그 공간 속에 우리가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어떤 반응을 선택하는지에 우리의 성장과 자유가 달렸다’라고 했다.

우리가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많은 자극을 접하게 되는데, 반응까지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색깔이 달라진다는 인생살이의 지혜를 얘기한 것이리라. 이 글을 접하면서 우리가 평소 생활하면서 또 교훈으로 삼아야 할 부분으로 ‘자극’을 ‘화(火)가 날 일’로 ‘반응’을 ‘화를 내는 것’으로 생각을 해보았다.

보도에 따르면,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욕설이나 고함을 지르는 ‘분노조절 장애’ 환자가 많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노조절 장애는 어떤 행동을 하고 싶다는 자극을 조절하지 못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일종의 정신질환인데, 의학적으로 정확한 진단명이 아니고 간헐적 폭발 장애, 적대적 반항 장애 같은 여러 질환의 증세를 통칭해서 부르는 용어다.

그러면, 화가 날 일이 생겼을 때 그대로 화를 낼 경우 과연 어떤 현상이 생길까? 예를 들어, 어느 직장 사무실에서 간부가 상관에게 질책을 받은 후, 직원에게 큰 소리로 화를 냈다고 생각해보자. 야단을 맞은 당사자는 물론 직원 전체가 한참 동안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거기서 얼마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며 고객에게는 얼마나 적극적인 자세로 서비스를 할 것인가? 한 사람이 화를 냄으로써 조직 전체에 큰 손실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가정과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한편, 화를 내는 것이 본인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이오와 주립대의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화를 참고 견뎌내는 훈련을 한 집단과 화를 내도록 권고받은 집단 사이의 분노표현을 비교했더니 후자는 작은 자극에도 쉽게 화를 내는 경향을 보였다. 즉 화를 내는 것도 습관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화를 자주 내면 본인의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러면, 화가 날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승려이면서도 킹 목사로부터 노벨평화상 후보에 추천까지 받은 틱 낫한은 “우리의 마음은 밭과 같다. 그 안에는 기쁨, 사랑, 희망과 같은 긍정의 씨앗이 있는가 하면 두려움, 미움, 시기, 절망과 같은 부정의 씨앗도 있다. 어떤 씨앗에 물을 줘 꽃을 피울 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고 했다. 그렇다. 화는 마음 속의 일이므로 그 화를 다스리는 것도 바로 우리 마음 속의 일인 것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하고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나름 터득한 방법이 있다. 앞의 간부처럼 질책을 받는 등 화가 날 일이 생겼을 때는 우선 심호흡을 하면서 질책을 받은 일의 원인부터 생각해 본다. 본인이나 직원의 잘못이 있으면 시정을 해야하고, 잘못의 정도 이상 또는 상관의 몰이해로 질책을 받았을 때는 ‘저 사람은 본래 그런 사람’이라 생각하면서 넘겨버리고 적절한 타임에 이해시키면 될 것이다. 그리고 잘못이 있는 부하직원에 대해서는 마음을 진정시킨 후에 개인적으로 찾아서 잘못된 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얘기해야 한다. 흥분해서 화를 내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에 마음 다스리기 훈련도 필요할 것이다.

다만, 화가 날 일이 생겼는데 참기만 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미국정신의학회에서 사용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DSM)에 Hwa-Byung(화병:火病)이라는 우리말이 그대로 영문으로 표기돼 있다. 즉, 화가 났을 때 잘 다스려서 해결을 해야지 무조건 참기만 하면 본인에게 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생길 수밖에 없고, 특히 불쾌지수가 높은 여름에는 더 생길 수 있는 ‘화’, 이 ‘화’를 슬기롭게 잘 다스림으로써 자신은 물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꿈꿔 본다.

이기원 전 울산시 기획관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