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김’ 행위로 암각화와 동시대 연결
울산 반구천의 암각화가 국내 17번째 세계유산에 등재된 가운데, 암각화처럼 비슷한 방법으로 작품 활동을 해온 세계적인 실험예술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울산시립미술관이 이달 14일부터 11월2일까지 미술관 지하 2층 제2전시실에서 포르투갈 출신 세계적 예술가 빌스(VHILS, 본명 알렉산드르 파르투)의 개인전 ‘그라피움 GRAPHIUM’을 열고 있다.
그라피움(Graphium)은 라틴어로 고대 로마에서 밀랍판 등에 글씨를 새기던 필기도구를 뜻하며, 그리스어 그라페이온(grapheion)에서 유래한 말로 ‘쓰다’ 또는 ‘새기다’를 의미한다.
이번 전시는 반구천의 암각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기념해 새김 행위를 매개로, 과거와 현재, 자연과 도시, 기억과 정체성을 연결하는 동시대 미술의 장을 선보인다.
빌스는 2000년대 초 그라피티 작가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벽면을 조각하고 표면을 깎아내는 독창적인 저부조 기법으로 창조적 파괴의 미학을 구축해 왔다. 해머, 끌, 전동 드릴뿐 아니라 폭발물과 부식제까지 활용해 도시의 표면을 해체하며, 그 속에 숨겨진 시간의 층위와 역사 속에 기록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 그리고 기억을 드러낸다. 그의 작업은 전 세계 주요 도시의 건물 외벽, 철거 현장, 광고판, 폐자재 위에 남겨졌으며, 익명의 인물과 지역 공동체의 기억을 시각화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라피움 전시는 △표면 긁기 프로젝트 △빌스의 도구들 △반구천의 암각화 도구들 △빌스의 재료들 △빌보드 시리즈 △느린 시간의 도시 △폭발과 잔해 등 7개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특히 전시장 한편에는 울산암각화박물관에서 대여한 선사시대 고래뼈가 함께 전시된다. 암각화 속 고래 형상이 실제 생물에 기반했음을 보여주는 이 유물은, 7000년 전 인간과 자연이 맺었던 관계를 오늘날로 불러오며 과거와 현재, 기록과 예술을 이어준다.
울산시립미술관 관계자는 “빌스의 작업은 과거와 현재, 물질과 기억을 오가며 우리가 사는 도시의 정체성을 다시 성찰하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관람료는 성인 1000원(울산시민 500원), 대학생·군인·예술인 700원이다. 자세한 사항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의 229·8423. 차형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