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산업화의 상징 울산, 산업박물관 유치 접어야 하나
국가 산업사의 총체적 기록을 담는 국립산업기술박물관 유치 사업을 울산시가 사실상 포기했다. 시는 이 사업을 공약 폐기 대상으로 분류하고, 주민배심원단 심의를 거쳐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예비타당성조사 실패와 막대한 재정 부담, 정부의 무관심이 겹치며 더 이상 추진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국립산업기술박물관은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기술 혁신의 역사를 집대성할 전국 단일 전문 박물관으로 기획됐다. 울산은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 주요 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산업수도인 만큼, 이 박물관의 최적지로 평가받아왔다. 이 사업은 박근혜정부 시절 지역공약으로 확정됐고,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도 포함됐지만, 끝내 결실을 맺지 못했다.
산업박물관은 2017년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에서 비용편익비율(B/C) 0.16, 종합평가(AHP) 0.226으로 ‘부적정’ 판정을 받아 큰 타격을 입었다. 또한, 관람객 기반이 제한적이어서 연간 129억원에 달하는 운영비 부담이 논란을 일으켰다. 이후 울산시는 체험형 콘텐츠 확대와 사업비 조정을 통해 보완을 시도했지만, 예타 문턱을 넘지 못했고, 정권 교체 후에는 정책 우선순위에서도 밀리며 추진 동력을 잃었다.
울산 내부에서도 회의론이 제기됐다. 이미 울산박물관이 산업역사 전시 기능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능 중복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울산시는 이 공약을 폐기 대상으로 조정하고, 국가 지원이 필수적인 국제정원박람회, 도시철도 건설, 반구천 암각화 보존 등 다른 현안에 재정을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즉, 불확실한 산업박물관을 포기하고 더 큰 목표를 추구하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울산의 산업화, 즉 조국 근대화의 핵심적인 주역으로서 그 역사와 기억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는 여전히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산업화 과정에서의 기술 진화와 노동의 희생, 기업의 도전과 실패는 단순한 경제 지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체성 그 자체다.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철도·해양·국방박물관이 존재하는 이유도 수익성 때문이 아니라 국가적 기억을 보존하는 책임 때문이다.
산업화 역사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산업화의 역사를 어떻게 남길 것인가, 그리고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그 출발점은 여전히 산업수도 울산일 수밖에 없다. 울산은 이 당위성을 국가가 외면하지 않도록 제기할 책임이 있다. 중앙정부 또한 산업기술 기억을 지켜야 할 책무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