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수 칼럼]2025년판 ‘여의도의 타이태닉호’

2025-08-18     김두수 기자

113년 전인 1912년 4월15일. 승객 2200여명을 태운 타이태닉호는 북대서양 뉴펀들랜드 검푸른 바다 한가운데 거대 빙산과 정면충돌했다. 1500여명이 숨지고 700여명이 생명을 건졌다. 85년이 지난 1997년 실제 사고를 바탕으로 각본을 만들어 영화가 제작됐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흥행몰이를 통해 총 21억8000만달러(3조270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선장 ‘에드워드 존 스미스’가 구명정에 탈 수 있음에도 끝까지 타이태닉과 함께 침몰하는 장면에선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정점은 역시 뜨거운 감동을 담은 사랑의 대서사다. 세계적 백만장자는 자신이 살 수 없음을 직감하고 하녀를 구명정에 태운 후 “제발 너만은 살아다오”라는 말과 함께 신사답게 침몰했다. 생과 사 중대 기로의 순간에도 연인을 구명보트에 태워 보내는 장면은 뜨거운 인간애가 묻어난다. 죽음의 망망대해에서도 700여명이 생명을 건진 이유는 ‘나보다 네가 먼저 살아다오’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로부터 110여년이 지난 지금. 서울 여의도 정치권을 타이태닉호에 비유하면 어떻게 될까. 107명의 선원이 탄 배는 ‘1호 당원’ 격이었던 ‘윤석열 부부’의 국정농단 의혹과 정면으로 부딪쳐 침몰 위기에 직면했다.

독단적이고도 파행적 국정운영에서 나아가 윤 부부의 ‘나눠 먹은 권력’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뜬금없는 내란 비상계엄으로 나라 전체를 아수라장으로 추락시켰다. 결과는 비참했다. 부부 권력공동체의 종착역은 헌정사 초유 ‘감옥 공동체’로 귀착됐다. 그런데 지난 3년 동안 윤 정권에 기대어 친윤 완장으로 호가호위했던 ‘그들’은 어떻게 했나? 국가와 당보다 개인 영달이 우선이었다. 서울 도심 아스팔트 위에서, 한남동 관저 앞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윤 부부 사수에 몰입했다. 그런 그들이 3대 특검의 서슬 퍼런 칼날에 의해 ‘윤 부부’가 영어의 몸이 된 후엔 모두 어딜갔나?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잘못도 없다.” 비겁함과 비굴함에 더해 비루하게까지 느껴진다. 이런 상황에서 더더욱 심각성은 8·22 전당대회를 코앞에 두고서다. 1912년의 타이태닉호는 희생과 감동의 대서사였다면 2025년판 ‘여의도의 타이태닉호’는 갑판 위에서 “나만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집권당 최강성 대표로 등극한 정청래는 국민의힘을 이미 내란 정당으로 못박았다. 나아가 헌법재판소로 몰고 가 정당해산까지 벼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당권 주자들은 가관이다. 윤 탄핵 반대를 외쳐온 아스팔트 극우세력까지 끌어들여 축제와 잔칫상을 난장판으로 전락시켰다. 문제는 새 선장이 누가 되느냐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외면하는 자기네들만의 선장이냐,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이라도 ‘맑은 정신’의 선장이냐.

12·3 내란 계엄사태에 대한 평가는 지역과 진영, 이념을 초월해 헌법과 상식에 맞게 옳음과 그름이 기준이 돼야 한다. ‘네 편, 내 편’에만 집착한 채 이성 잃은 싸움판은 또 한 번의 패착이 될 것이다. 심각성은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최대 전장이 될 내년 6·3 지방선거에 있다. 8개월 앞둔 지금 보수 텃밭조차 흔들리고 있다. 개별 우수한 상품을 진열해 놓은들 뭐 하나. 입간판의 낡음에 더해 아스팔트 위의 애창곡만 틀어대면 패망은 불 보듯 하다. 2018년 6월 지방선거 당시 문재인 정권의 싹쓸이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혁신(革新)의 본뜻은 ‘가죽을 벗긴다’는 의미다. 다선의 금배지면 뭐하나. 여의도에서 하릴없는 웰빙 정치는 있으나 마나 하다는 게 보수 안팎의 추상같은 비판 여론이다. 2025년 ‘여의도의 타이태닉호’. 해법은 복잡한 건 같지만 의외로 간단하다. 침몰 위기에 직면한 국민의힘호에 산소호흡기를 꽂을 수 있는 비장함과 결단이다. 늦어도 한참 늦은 감은 있다. “모든 건 나의 책임이다. 윤 부부가 구속되고 당이 침몰하는데 금배지가 무슨 소용이겠느냐. 국민의힘은 반드시 살아야 한다” 선당후사로 눈물겨운 감동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금배지는 과연 없나. 난파선에서 살신성인은 희망, 미래를 열어가는 확실한 동력이다. 2030 대선에서 보수의 뉴페이스로 소환될지도 모른다. 작금의 아스팔트 주변에선 들고양이와 들쥐만이 득실거린다. 밀림 속에서 꿈틀거리는 호랑이는 과연 없는 것일까?

김두수 서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