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국가어항 ‘정자항’, 선주도 어민도 못 품는다

2025-08-19     김은정 기자
“예전 같으면 주말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요즘은 장사 접은 집이 더 많습니다”

18일 찾은 울산 북구 정자항 일원. 항 입구에 줄지어 선 횟집 중 절반 가까이는 불이 꺼져 있거나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한낮 뙤약볕 아래 손님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고, 상인들만 가게 앞에 앉아 부채질을 하며 드문드문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으려 애쓰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주말에도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고 업주들은 입을 모았다.

한때는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차량이 몰려 주차공간이 부족했지만 지금은 한산한 풍경이 일상이 됐다. 한 상인은 “예전엔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왔지만 요즘은 장사가 되지 않아 가게 문을 닫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민생회복 지원금으로 잠시 숨통이 트이길 기대했지만, 정자항이 전반적으로 침체돼 상인과 선주들이 함께 힘을 모으지 않고서는 개선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자항은 방어진항과 함께 울산의 두 국가어항 중 하나다. 지난 197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돼 북구 어업의 거점 역할을 해왔다.

특히 가자미 등 활어를 잡는 자망선이 많아 전체 어선의 65%가량이 대형선박이지만, 항 규모는 협소하고 기반 시설은 턱없이 부족해 문제로 지적됐다.

북구청에 따르면 지난 2018년 판지항 인근에 어항 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이 추진됐지만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그 여파로 정자항 어선들은 접안 공간 부족과 시설 미비로 불편을 겪고 있으며 정박지가 상권과 가까워 위생·경관 문제까지 겹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지난해 항내 유일하게 남아있던 정자수리조선소가 부도로 문을 닫으면서, 간단한 수리조차 부산이나 방어진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한 자망어선 선주는 “어선은 최소 1년에 한번은 수리를 해야 하는데, 부산이나 방어진까지 가려면 어구를 모두 걷어내고 이동만 해도 사흘은 걸린다”며 “이 가운데 자력 항해가 불가능한 배는 예인선이 필요한데, 정자항에는 예인선이 부족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호소했다.

이에 정자자망선주협회가 정자조선소 유치를 추진하고 있지만, 일대의 높은 공시지가로 인한 이용료 부담 등 현실적 제약에 가로막혀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수산물 유통 구조도 문제다. 강동 수산물위판장은 운영이 중단된 지 몇년이 지나 사실상 폐허로 변했고, 이로 인한 민원이 주기적으로 접수되고 있다. 위판장이 없어 어민들은 잡은 활어를 활어차로 방어진이나 울산공판장으로 보내고 있지만 그마저도 어려움이 많다.

정자에서 30년 가까이 조업해 온 한 선주는 “활어차로 다른 위판장에 보내면 등록 선박보다 값이 낮게 매겨져 손해를 본다”며 “와중에 활어차 구하기조차 쉽지 않아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이미 수익 구조가 무너진 상황에서 위판장이나 조선소를 다시 들여와도 안정적인 운영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자어촌계 한 관계자는 “항 규모가 크지도 작지도 않아 애매하고, 어업 수입이 급감해 무엇을 들여와도 성공하기 힘든 구조”라며 “결국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떠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행정 지원에도 한계가 있다. 현재 정자항은 북구가 관리 위임을 받아 소규모 정비나 지원 사업을 하고 있지만, 이용 계획 변경 등의 대규모 개편은 권한 밖이다. 북구는 지난 5월 해양수산부의 ‘CLEAN 국가어항’ 공모 사업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북구 관계자는 “어항 규모를 확장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전면적인 개선 역시 예산과 행정적 제약으로 구청 단독 추진은 어렵다”며 “다만 어구 보관 지원이나 창고 설치 등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지원하고, 울산해수청 등과 협의해 개선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은정기자 k2129173@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