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美 관세 장벽, 자동차 산업용 전력 반도체 기술 자립으로 넘는다

2025-08-20     경상일보

미국의 거센 관세 파고가 한국 자동차 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유례없는 보호무역주의 흐름 속에서 자동차는 물론, 이제는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반도체마저 관세 장벽의 표적이 되면서 국내 산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에 대해 기존의 무관세 혜택을 없애고 1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결정은 수출 전선에 적신호를 켰다. 이는 완성차 업계의 가격 경쟁력 약화와 수익성 악화로 직결되는 심각한 문제다.

이러한 정면 돌파가 어려운 무역 장벽 앞에서, 우리는 기술 고도화를 통한 우회로 개척이라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관세의 파고를 넘기 위한 핵심 전략은 바로 ‘차량용 전력 반도체’와 이를 뒷받침하는 ‘첨단 패키징 소재’ 기술의 완전한 내재화에 있다. 이는 단순히 부품을 국산화하는 차원을 넘어, 미래차의 핵심 경쟁력을 우리 손으로 직접 쥐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로 대표되는 미래차 시대의 심장은 단연 전력 반도체다. 내연기관차의 엔진과 변속기 역할을 전기차에서는 전력 반도체가 담당한다. 배터리의 직류 전기를 교류로 변환해 모터를 구동하고, 차량 내 다양한 전장 부품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이 작은 부품이 자동차의 성능과 효율, 그리고 안정성을 좌우한다.

기존의 실리콘(Si) 기반 반도체는 전기차의 높은 전압과 열을 감당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차세대 소재로 각광받는 것이 바로 실리콘 카바이드(SiC)와 갈륨 나이트라이드(GaN)다. SiC 반도체는 기존 실리콘 반도체보다 10배 높은 전압을 견디고, 전력 손실은 절반으로 줄여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 ‘꿈의 반도체 소재’로 불리는 이유다.

미국의 관세 압박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전력 반도체 기술 자립의 시급성을 일깨워주었다. 완성차 수출에 붙는 관세를 상쇄하고도 남을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수입에 의존해왔던 핵심 부품인 전력 반도체의 국산화가 필수적이다. 현대차그룹을 필두로 삼성, DB하이텍 등 국내 대기업과 중소·중견 기업들이 SiC, GaN 기반 전력 반도체 개발에 사활을 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 역시 연구개발(R&D) 지원과 성능 평가 인프라 구축 등 ‘차량용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을 통해 기업들의 기술 독립 노력을 적극 뒷받침하고 있다.

뛰어난 성능의 전력 반도체를 개발했다 하더라도,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다. 바로 ‘패키징’ 기술이다. 반도체 칩은 외부의 습기, 열, 충격 등으로부터 보호하고, 메인보드와 전기적 신호를 원활하게 주고받을 수 있도록 포장하는 패키징 공정을 거쳐야 비로소 완제품이 된다.

특히 고전압·고열 환경에서 작동하는 전력 반도체는 열을 효과적으로 방출하는 고방열 패키징 기술이 핵심 경쟁력이다. 아무리 좋은 칩을 만들어도 열을 제대로 식히지 못하면 성능 저하는 물론 안정성까지 위협받기 때문이다. 현재 첨단 패키징 기술은 소수의 해외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어, 이 분야의 기술 종속을 끊어내지 못하면 ‘반쪽짜리 국산화’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에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은 전력 반도체의 열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패키징 소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칩과 기판을 연결하는 와이어부터 칩을 감싸는 봉지재(EMC), 열을 식히는 방열기판에 이르기까지 국산화의 깃발을 꽂기 위한 노력이 치열하다. 이는 단순히 수입 대체 효과를 넘어, 국내 반도체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미국의 관세 장벽은 우리에게 분명한 위기다. 하지만 위기는 곧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과거 일본의 수출규제가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체질 개선을 이끌었듯, 미국의 관세 압박은 우리 자동차 및 반도체 산업이 ‘기술 자립’이라는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이제 선택은 명확하다. 관세의 파도에 흔들리는 배가 될 것인가, 아니면 기술이라는 견고한 돛을 달고 순항할 것인가. 차량용 전력 반도체와 첨단 패키징 기술의 완전한 독립은 한국 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정부와 기업, 연구기관이 혼연일체가 되어 기술 주권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정은 울산대학교 신소재·반도체융합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