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기억하지 않는다
AI 시대가 일상이 되고 있다. 오늘 아침 뉴스에는 한국인이 AI를 어느 정도 이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문 내용이 있었다. 언뜻 듣기에도 이미 60%가 넘는다는 내용이었다. 지구상에서 생물이 살아가고 있는 영역이 바이오피스어(Bioshpere)라면, 이제 인간은 생물학적 차원을 넘어서서 인포스피어(Inforshoere)에 거주한다.
철학자 플로리디는 컴퓨터 과학과 정보 통신 기술의 영향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가 본질적으로 정보적인 속성을 지닌 곳으로 변했다고 통찰했다. 이러한 변화로 많은 측면에서 인간은 자신을 상호 연결된 정보적 유기체인 ‘인포그’로 이해하며 생물학적 행위자들 및 공학적 인공물들과 정보로 이루어진 총체적 환경인 ‘인포스피어’를 공유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인간을 비롯해 인포스피어에 거주하는 모든 존재자나 행위자는 모두 동등하게 ‘정보적’이다고 분석한다. 모두 동등하게 정보적이다. 동등하게 정보적 존재라는 것은 언제든, 누구든, 피동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자칫하면 피동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인간은 더 이상 주체적인 대상으로 차별화되지 않는다.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것일 뿐임에도 우리가 만든 인터넷 공간에서 우리는 철저하게 주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휴대폰을 사용하면서부터 더 이상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는다. 수첩에 메모해 뒀다가 해당 번호를 눌러서 소통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더 이상 전화번호를 따로 기억하지 않는다. 휴대폰을 터치해서 검색한 후 통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약속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도 특정 장소를 검색하고 네비게이션 기능을 활용한다. 편리하다. 안내하는 대로 가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이상 길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리고 번역기를 이용해서 다양한 언어권 사람들과 쉽게 소통한다. 더 이상 다른 언어를 익힐 필요가 없어졌다. 언어적 소통의 제약으로 더 상위 단계의 활동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구로 번역기를 사용해야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언어를 배우지 않고 번역기를 소비하기만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아이들에게는 AI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아이들은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전에 대부분 AI에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휴대폰이나 컴퓨터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모두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다.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에 ‘의존’하고 있다. 지금 나에게 만약 휴대폰이 없다면 바로 공포감에 휩싸일 것이다. 전화번호를 하나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기억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어떤 것도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어떤 것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학교는 도구를 ‘활용’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학교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현실이다.
이현국 삼산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