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스토킹은 예고된 살인, 제도는 여전히 무기력하다
울산 북구 병원 주차장에서 벌어진 살인미수 사건은 단순한 개인적 갈등이 아니다. 스토킹이 얼마나 치명적인 폭력으로 번질 수 있는지를 드러낸 사회적 참사다. 피의자 장형준(33)은 이별을 통보한 전 연인을 집요하게 스토킹하다가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까지 무시하고 흉기를 휘둘렀다. 피해자는 수십 차례의 상처로 생사를 넘나들었고, 시민들의 제지와 응급조치가 없었다면 비극은 돌이킬 수 없었을 것이다. 검찰이 살인미수 피의자의 신상을 이례적으로 공개한 것은 그만큼 이번 사건이 지닌 심각성을 방증한다.
이번 사건의 핵심 문제는 경찰과 제도가 피해자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 피해자는 이미 수차례 신고했고 접근금지 명령까지 받아냈지만, 가해자에게는 종이 한 장에 불과했다. 현행 스토킹처벌법은 ‘지속성’과 ‘반복성’을 요건으로 두면서도 위반에 대한 실질적 제재는 약하다. 잠정조치 위반으로 즉각 구속되는 경우는 3% 남짓에 불과하니, 피해자 입장에서 법은 믿을 수 없는 허울에 가깝다. 경찰도 초기 개입과 응급조치에 머물렀을 뿐, 가해자의 집요한 폭력성을 제압할 수 있는 실질적 대응 체계를 작동시키지 못했다.
교제폭력의 본질은 ‘강압적 통제’다. 가해자가 상대를 소유물처럼 여기며 일상과 관계 전반을 지배하려 드는 구조적 폭력이다. 이별을 선택해도 폭력이 멈추지 않고 오히려 보복 위협으로 이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강압적 통제’를 독립된 범죄로 규정해 물리적 폭력 이전 단계부터 개입하고 있다. 살인으로 가기 전 고리를 끊는 예방적 장치다.
이번 사건은 우리 제도의 빈틈을 뚜렷하게 보여줬다. 이제는 제도 개선이 불가피하다. 교제폭력 특별법 제정이나 가정폭력처벌법 적용 범위 확대가 시급하다. 스토킹처벌법도 ‘반복성’ 요건 대신 ‘위해 의도’와 ‘피해자의 불안 조성’ 중심으로 개정해야 한다. 피해자 보호 시스템의 실질적 강화도 시급하다. 현행 긴급응급조치의 한계를 보완하고, 가해자 구금 등 강력한 잠정조치의 적용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 피해자 지원 체계를 확충해 상담, 법률지원, 긴급 보호 등 맞춤형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 청소년·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예방 교육 의무화도 필요하다. 스토킹은 결코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니다. 이 사건은 더 이상 우리 사회가 침묵하거나 방관할 수 없다는 경고다.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 제도적 안전망 구축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국회와 사법부, 경찰이 하루빨리 종이 위의 법을 살아 있는 제도로 바꿔내야 한다. 그래야만 다시는 ‘예고된 폭력’을 목격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