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생명에는 경계가 없다, 농촌지역 의료를 살려야 한다

2025-08-25     경상일보

대한민국은 지금 고령화와 인구 감소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있다. 그 파도는 특히 농촌을 무겁게 짓누른다. 청년들은 도시로 떠나고, 마을에는 노인들만 남았다. 그러나 인구 문제만큼 심각한 것이 있다. 바로 농촌의 열악한 의료 현실이다. 의료 접근성의 격차는 단순한 생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곧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다. 도시에서는 비교적 쉽게 받을 수 있는 진료와 치료가 농촌에서는 생사를 가르는 문제로 변한다. 농촌의 의료 불평등은 단순한 지역 격차가 아니라, 생명권의 차별이자 국가적 책무의 방기다.

정부는 공중보건의사 제도나 보건진료소 설치, 원격의료 시범사업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아왔다. 그러나 대부분은 임시적이거나 미봉책에 그치고 있다. 공중보건의사는 복무 기간이 끝나면 떠나고, 보건진료소는 간단한 치료만 가능할 뿐 전문성이 부족하다. 원격의료도 고령층에게는 기술적 장벽이 너무 높다. 농촌 주민들은 ‘의료 서비스의 선택권’ 자체가 제한된 상황에 놓여 있으며, 그 결과 기대수명과 건강 수명이 도시보다 뒤처지고 있다. 농촌 의료 확충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응급의료체계의 강화, 공공병원의 역할 확대, 이동형·원격 의료 서비스 정착, 돌봄과 복지의 통합이 핵심 과제다. 먼저 농촌 거점 공공병원을 현대화해 최소한의 필수 진료와 응급 진료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의료 인력을 시장 논리에만 맡길 수 없다. 일정 기간 농촌 근무를 전문의 과정에 반영하거나 재정적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국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

또한 고령층이 많은 농촌에는 ‘찾아가는 의료’가 절실하다. 순회 진료 차량, 검진 버스가 정기적으로 마을을 방문한다면 만성질환 관리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원격진료는 보건진료원이나 간호사가 중개해 어르신들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 복지와 재활, 돌봄 서비스까지 연계된다면 주민들은 자기 마을에서 최소한의 건강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의료의 문제가 아니라 농촌 공동체를 지탱하는 토대가 된다.

농촌은 우리의 식량을 지키고, 환경과 생태계를 유지하는 공간이다. 의료 인프라가 부실하다면 젊은 세대는 농촌으로 돌아오려 하지 않을 것이고, 농촌 소멸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의료는 곧 지역의 생존과 직결된다. 농촌 의료를 지키는 일은 국가 균형발전 전략이자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생명에는 경계가 없어야 한다. 도시와 농촌을 가르는 경계가 병원 문 앞에서, 응급실의 문턱에서, 혹은 구급차의 시간 차이에서 생겨서는 안 된다.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생명권은 거주지에 따라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이제는 도시 중심의 의료 정책에서 벗어나, 농촌 보건의료를 국가적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살고, 의료가 있어야 농촌이 산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결코 미뤄서는 안 될 시대의 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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