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수문설치로 암각화 보존 가능할까?
반구대 암각화가 우리나라에서 17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공업도시 울산이 문화도시로 품격이 높아져 시민들이 자부심을 갖게 됐다. 유네스코에서는 암각화 보존방안으로 제시된 ‘사연댐 여수로 수문설치안’에 대해 그 추진과정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필자는 지난 20여년동안 수십차례의 언론기고와 세미나를 통해, 사연댐을 낮추고 수문설치하는 것이 오히려 암각화를 심각하게 훼손시킬 수 있다고 반대했다. 심지어, 2002년 울산시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수행했던 수문설치안 보고서에도, 홍수시 암각화 부근에 빠른 유속이 형성되어 침식과 세굴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어, 암각화 훼손이 걱정돼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암각화가 훼손돼 온 주된 이유는, 사연댐 건설 이후 수십년동안 매년 6개월 정도 물속에 잠겨 ‘모세관현상과 겨울철 동결융해’가 반복된 것에 기인한다. 그동안 문화재청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사연댐 수위를 52m이하로 낮추어 물 밖으로만 들어내면 보존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고, 이 방안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2003년 울산시가 처음으로 실시하였던 ‘반구대 암각화 보존학술연구’에 따르면, 독일 아헨대 지질연구소팀이 암각화면의 189곳에 ‘슈미터해머(쇠망치)’로 타격해 암각화면의 강도와 풍화상태를 실험했는데, 그 결과 암각화면의 중심부를 제외하고는 흙이 되기 직전의 상태라고 했다.
암각화가 많이 훼손됐지만, 현 상태에서나마 온전히 보존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암각화를 물과 완전히 격리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연댐을 아예 철거하거나 암각화 앞에 제방을 설치해 물의 접촉을 차단해야 한다.
울산시는 암각화 보존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중요한 물 확보와 시가지 홍수피해방지도 가능한 ‘생태제방안’으로 문화재청과 줄곧 협의해 왔으나, 암각화 주변 지형의 원형보존이라는 명분 때문에 거부됐다. 사실 문화재청도 10여년전, ‘가변형 임시물막이’ 설치를 3년동안 수십억의 예산으로 암각화 부근에 모형을 설치하는 등 적극 추진한 바 있으며, 구조적 결함으로 도중에 중단된 바 있다.
수문설치안이란, 현재 EL.60m인 댐 여수로를 EL.45.9m까지 낮추고, 수위가 EL.52m로 유지될 수 있도록 여수로에 3개의 수문을 설치하는 것이다. 수문설치 이후에 암각화가 훼손될 수 있는 중요한 이유는, 홍수시 수문을 열때 암각화면에 형성되는 ‘빠른 유속과 부유물에 의한 침식과 세굴’ 때문이다. 암각화의 풍화상태가 심각하므로 매년 물속을 자맥질하면서 서서히 훼손되는 것과는 달리, 단 한번의 빠른 유속으로도 암각화 전체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실제로 2003년 울산시의 암각화보존 학술연구보고서에는 암각화 상단부(EL.60m부근)에 유속에 의해 세굴된 뚜렷한 흔적이 조사되어 있다.
현재 실시설계가 진행 중인 사연댐 수문설치안에 대해, 홍수시 암각화면에 빠른 유속이 형성돼 침식과 세굴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연구가 많다. 2009년 한국수자원공사와 2010년 공주대의 연구보고서, 특히 2013년 울산시가 한국수자원학회에 의뢰해 실시했던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위한 수리모형실험 연구’ 등이 있다.
더구나, 2022년 유네스코등재를 위해 실시했던 울산시의 ‘사연댐 여수로 수문설치타당성 조사보고서(PP.7-33)’에서도 수문설치로 수위조절에 따라 홍수시 암각화 부근에 증가한 유속에 의해 침식과 세굴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추후 “유속과 부유물에 의한 암각화 손상위험 연구”를 통해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암각화 보존방안으로 확정한 것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결론적으로, 반구대 암각화의 유네스코 등재라는 명분 때문에, 과학적 근거도 무시하고 무조건 물 밖으로만 들어내면 보존된다는 생각에 이와 같은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사연댐 수문설치안은 암각화도 보존할 수 없고, 소중한 물도 버리고, 시가지 홍수피해도 가중시킬 수 있는 가장 어리석은 방안이다. 암각화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인정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급한 불은 끈 상태이므로, 문화재청과 울산시는 ‘온전한 암각화 보존방안’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
조홍제 울산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