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태의 인생수업(8)]내일이 없더라도, 오늘을 후회 없이
삶이 서서히 저물어가는 고요한 순간, 사람들은 마침내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말수는 줄고, 그 대신 마음속 깊이 감춰두었던 진실이 조용히 떠오른다. 그 고백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아프다. 그것은 삶과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한 이들만이 꺼낼 수 있는, 가장 순도 높은 언어이기 때문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임종을 앞둔 이들의 마지막 말을 오랫동안 기록해왔다. 놀랍게도 수많은 이야기는 결국 몇 가지 공통된 후회로 모인다.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는가?”라는 질문이 그 중심에 있다. 많은 이들이 “남들의 기대에 맞추느라 정작 나 자신을 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부모의 바람, 사회의 시선, 타인의 칭찬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잃는다. 장 폴 사르트르가 말했듯, “타인의 시선은 지옥이다.” 인생은 남이 정해주는 무대가 아니라 오롯이 자신만의 무대여야 한다.
퇴직 후의 나는 이 진실을 조금 늦게 깨달았다. 직장이라는 무대에서 내려온 뒤 비로소 내 삶을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 오전에는 일하며 나의 전문성을 사회에 나눈다. 오후에는 독서와 글쓰기로 나를 가꾸고, 저녁에는 배우자와 반려견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조로운 일상일지 모르지만, 이 흐름 속에서 나는 성찰과 평화를 경험한다. 만약 내일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다 해도, 지금의 일상은 후회가 아닌 감사로 기억되리라 믿는다.
노년학은 노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미와 관계’라고 말한다. 경제적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그리고 누구와 함께 살아가는지다. 나는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여전히 성장하고 있으며, 그것을 공동체와 나누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글 한 편이 누군가의 성찰을 불러일으키고, 한 문장이 타인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나의 존재 이유다.
심리학적으로도 후회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이다. 다만 우리는 후회를 줄일 수 있다. 감정에 솔직해지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지금 이 순간 소중한 관계에 귀 기울일 때, 후회는 줄어든다. 헤르만 헤세가 말했듯, “가장 후회되는 일은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후회 없는 삶은 없지만, 후회를 덜어내려는 성실한 하루하루가 곧 충만한 삶을 만든다.
삶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매일을 정직하게 살고,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을 살아내며, 소중한 관계를 아끼는 삶은 언제나 후회가 적다. 죽음을 앞둔 이들이 우리에게 남기는 마지막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들이 누리지 못한 것을 우리는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인생의 위대한 비밀은 그것이 유한하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는 더없이 소중하다. 나는 매일의 글쓰기로 나를 발견하고, 나눔으로 공동체에 기여하며,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언젠가 인생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담담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나답게 살았고, 후회는 덜어냈다.” 정안태 '오늘하루 행복수업' 저자·울산안전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