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물의 감옥’ 갇힌 반구천 암각화, 해법은 여전히 침수 중
사연댐 수위가 53m 아래로 떨어지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반구천 암각화가 3일 연속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달 19일 집중호우로 완전히 잠긴지 36일 만의 귀환이다. 그러나 이 귀중한 유산과의 만남은 또다시 일시적일 뿐이다. 댐 수위가 52m를 넘나들며 언제든 암각화를 삼킬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어서다. 암각화는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우리는 여전히 실효성 있는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울산 반구천 암각화를 방문한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이날 당초 2030년 상반기 준공 예정이던 사연댐 수문(3문) 설치 사업을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현재 실시설계 단계에 머물고 있는 이 사업의 속도를 높여, 사연댐 수위를 52m 이하로 유지함으로써 암각화 침수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수문 설치만으로는 암각화 훼손을 막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침수를 지연시킬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보존 대책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19일의 사례처럼 집중호우로 초당 100~300t의 유입량이 발생하면 암각화 침수를 막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더 나아가 사연댐 수문 설치가 암각화 보존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훼손을 촉진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조홍제 울산대 명예교수는 “댐 수위를 어중간하게 낮출 경우, 매년 반복되는 홍수 시 빠른 유속에 의해 세굴(침식)되는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고 진단했다. 암각화가 완전히 침수되는 것보다, 수위를 암각화 하단보다 불과 1m 낮게 유지할 경우 오히려 침식 피해가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또 하나의 문제는, ‘선(先) 암각화 보존, 후(後) 용수 확보’라는 원칙을 수용한 울산의 결단이 점차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대구시의 취수원을 안동댐 하류로 옮기려던 ‘맑은물 하이웨이’ 계획을 철회하고 구미 해평취수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로 인해 울산이 기대했던 운문댐 용수(하루 4만9000t) 배분 계획도 불확실성에 빠졌다. 공중에 붕 뜬 격이다. 시는 사연댐 수위 조절 시 하루 8만9000t의 용수가 부족해 조속히 대체 수원 확보를 정부에 요청 중이다.
반구천 암각화 보존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6000년 인류 역사를 지키는 문명적 책무다. 울산에만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정부는 수문 설치를 넘어, 울산의 대체 수원 확보를 위한 국가적 전략과 실행력을 신속히 갖춰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