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의 살며 생각하며(64)]오일장에 가는 이유
동네에도 오일장이 선다. 교통량이 적은 비탈길 이면도로가 장터다. 좌판의 물목도 장터만큼이나 소박하다. 철 따라 바뀌는 과일과 채소가 주를 이룬다. 한 번도 빠지지 않는 등이 굽은 생선 장수 할머니도 있다. 상추와 오이 등속을 몇 다발 벌여 놓고 하루 종일 오가는 사람을 쳐다본다. 의자도 없이 길바닥에 앉아있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일상의 무게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오일장은 어지간해서는 쉬지 않는다. 아스팔트가 녹을 것 같은 여름 날씨 속에서도 어김없이 장은 열린다. 에어컨 바람 속에서 더위를 피하다가 이 더위 속에도 장이 열릴까 궁금해 가보기도 한다. 누가 처음 이 비탈진 길에 좌판을 벌일 엄두를 냈을까 궁금해진다. 억지로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이런 염천에 호박잎 몇 다발을 팔려고 나올 리 없다. 이처럼 오일장은 특별한 장소나 시설이 없어도 열린다. 언양장이나 남창장은 번듯한 장터가 있지만 다운장이나 무거장은 이면도로에서 열리는 난전이다. 그래도 장날이 되면 장꾼들이 모이고 이날을 기다려 먹거리를 장만하는 사람도 많다.
특별히 살 것이 없어도 집 앞에서 열리는 오일장 장날이 되면 한 번은 둘러본다. 그리고 몇천원어치라도 사 들고 온다. 그리고 은근히 장날을 기다린다. 채소를 팔러온 할머니도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딱히 내다 팔 것은 없어도 장날 전에는 밭을 한 번 둘러봤을 것이다. 그리고 밭둑의 머위잎이라도 뜯었을 것이다. 다 팔아도 몇만원 남짓할 것 같은 장거리를 보면 어린 시절 장터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애잔해진다.
채소 농사를 짓거나 해초를 뜯어서 필요한 돈을 마련해야 하는 옛사람들은 오일장을 기준으로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돈 들어갈 일은 많아도 팔 것이 별로 없는 서민들은 가까운 오일장에 맞춰 손수 키우고 재배한 농수산물을 준비해야 했다. 현금을 마련할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날이 다가오면 온 식구가 풋것을 다듬는 일에 동원됐다. 리어카에 짐을 싣고 20리 길을 예사로 오가던 시절의 이야기다. 농약이나 씨앗을 준비하는 일도 오일장에서 풋것을 팔아야 가능했다. 지금도 남창 장날이 되면 옛 추억을 따라서 차를 몰기도 한다.
오일장에 젊은이들이 오는 일은 드물다. 파는 사람도 늙었고 사는 사람도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쾌적한 마트 환경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질서 없이 골목 따라 퍼져 있는 장터에서 물건을 사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가격이 정해져 있지도 않다. 그리고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도 없으니 더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오일장은 없어지지 않고 노인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장터에 가서 얻어 오는 것은 채소나 과일만이 아니다. 거래의 최소 단위가 돼버린 1000원짜리 한 장의 가치를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곳이 오일장이다. 채소 파는 할머니들과 할 수 있는 가장 큰 흥정이 1000원이기 때문이다. 평소 지갑 속에 있는 1000원짜리 지폐는 그 수를 세어보지도 않거니와 사용할 기회도 거의 없다. 그러나 장날에는 몇 장의 지폐로 양손 가득 야채를 살 수도 있다.
마트나 슈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약간의 긴장을 체험할 수 있는 곳도 오일장이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기 위해서는 우선 장터를 한 바퀴 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물건값을 흥정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도 장보기에 필요한 일이다. 경험이 많은 장꾼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건을 고르는 일도 품질이 일정한 마트나 슈퍼와는 달라야 한다. 똑같은 물건을 여러 사람이 팔기 때문에, 가격과 품질을 고려한 순간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많고 적음과 좋고 나쁨이라는 판단기준이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모습으로 적용되는 곳이 장터라고 생각한다.
오일장에서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복잡한 논리가 사용되지 않는다. 파는 사람의 물건도 소박하고 사는 사람의 주머니도 넉넉하지 않다. 그래서 가장 단순하고 직접적인 거래가 이뤄진다. 포장도 없이 맨손으로 물건을 주고받는 정이 아직 남아 있는 곳이다. 그래서 물건을 사는 일보다 시장의 정서를 느끼는 일에 더 무게를 두기도 한다.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