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80)충의가-성삼문(1418~1456)
죽어서도 지키겠다는 결연한 충정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 할제 독야청청하리라 <청구영언>
성삼문은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잔혹한 국문을 받고 극형에 쳐해졌다. 위 충의가는 절명시처럼 비장하면서도 의롭고 호방하다.
세종대왕께서 어린 세손인 단종을 안고 어루며 세손의 시대를 함께 열어갈 집현전 학자들에게 늘 단종의 안위를 당부한 말씀을 잊지 않았던 성삼문이다. 충신은 끝내 단종의 숙부인 세조의 시대를 역행하고 말았다.
신하 된 이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의지로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에 세조의 쿠데타에 죽음으로 저항한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그는 충성과 절개를 실천한 학자이며 관료였다.
시대는 언제나 흐르고 역사는 반복된다. 이 시대에도 진정한 나라사랑의 군주가 있는 것이며 진정한 충신이 있는 것인가. 군주로서 왕좌를 누린다는 것은 진정 만백성의 존경을 받고 만 백성의 안위와 국방과 외교를 짊어진 몸으로 국민이 위탁해준 권리를 행사함에 있어서 더 이상 무엇을 더 탐하며 더 이상 개인의 사욕을 무엇하려 꾀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신명을 바쳐 더 잘 사는 나라, 더 행복한 국민을 이끌어 가는 것 외에더 무엇을 채우겠다는 것인가. 퇴임 후에도 충분한 연금으로 국민이 보살펴 줄 것인데도 말이다.
훌륭한 성군 아래 충신이 나는 것이다. 세종대왕 시대를 함께 열어간 신하들은 대왕의 충정 아래 진정 무릎 꿇은 신하였다.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恨)하노라 / 주려 죽을진들 채미(採薇)도 하는 것가 / 아모리 푸새엣 것인들 그 뉘 따에 났더냐.//”
위 시조도 굶어 죽을지언정 반역한 군주의 땅 고사리도 뜯지 않겠다는 성삼문의 결연한 충정의 단가이다.
이 시대에도 진정한 군주와 그 아래 진정한 충의의 관료가 있긴 있을까. 기대하는 소시민의 간절한 목소리다.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