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의 도서관 산책(8)]해안마을의 문화 등대, 꽃바위작은도서관
울산시 동구 방어동 해안마을에 자리한 꽃바위작은도서관을 찾았다. ‘꽃바위(花岩)’는 방어동의 옛 지명이다. 이곳은 동구 중심권에서 조금 떨어진 ‘외지’에 속한다. 마을에는 동양에서 가장 높은 화암추등대가 서 있고, 바닷가를 따라 이어진 화암등대길은 사계절 내내 산책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길 끝자락에는 현대중공업이 바다를 경계로 삼아 자리하고 있어, 고즈넉하면서도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풍경을 이룬다.
그런 마을 한복판에 2011년 꽃바위문화관 1층에 문을 연 이 공립 작은도서관은 책을 빌려주는 공간을 넘어 문화와 사람을 연결하는 소중한 마을 사랑방으로 자리 잡았다. 문화 인프라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주민들에게는 목마름을 달래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도서관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병풍처럼 펼쳐진 여섯 면의 ‘빅북(Big Book)’이다. 단순 장식물이 아니라 저자 사인회나 북 콘서트 무대 배경으로 활용되며, 이곳이 ‘어린이 특화 도서관’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내부로 들어가면 복층 구조의 아기자기한 공간이 마치 예쁜 책방을 연상케 한다. 상단 서가에는 어린이책이 배치돼 아이들이 자유롭게 앉거나 뒹굴며 책을 읽을 수 있고, 하단에는 영·유아 도서와 성인 도서를 별도로 구분해 천장까지 꽂혀 있다. 입구를 제외한 사면이 서가로 둘러싸여 있어 작은 독립 열람실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편, 동아리방에서는 연중 프로그램과 모임 활동이 활발히 이어진다.
연면적 216㎡ 규모의 이 도서관은 약 2만9000여권의 도서와 잡지를 소장하고 있다. 서가 배치는 직선 대신 나선형으로 구성해 공간의 경직됨을 줄였고, 안내 표시는 손 글씨 POP로 꾸며 친근감을 더했다. 또한 이용자는 신발을 벗고 입장하기 때문에 서가 사이 바닥 전체가 곧 열람 공간이 된다. 출입구 주변에는 ‘테마별 큐레이션 도서 코너’가 마련돼 있는데, 이는 도서관의 기본 서비스 정신을 잘 보여준다.
대표적인 큐레이션 코너 중 하나는 ‘초등 교과 연계 도서’이다. 교과서 수록 참고도서를 모아둬 학생들이 별도의 플랫폼을 뒤질 필요 없이 바로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또 다른 코너는‘독서 치료용 도서’로, 사서가 어린이의 나이와 발달 단계, 독서 수준을 고려해 책을 연결해 주며 심리적·정서적 치유를 돕는다. 특히 동구 보건소와 협력해 치매 관련 도서를 순환 비치하고, 대출자에게 시즌별로 치매 예방에 효과적인 만다라 키트 같은 상품을 제공하는 것은 도서관 서비스를 지역의 사회복지로 확대한 좋은 사례이다.
꽃바위도서관의 진가는 ‘동아리 활동’에서 더 빛난다. 자원봉사자들은 책 읽어주기 활동을 시작으로, 잦은 책 파손 문제를 해결하고자 ‘책 수선 교육’에 참여했다. 이를 계기로 ‘빅북 동아리’와 ‘책 보수 동아리’가 탄생했고, 운영 사례가 우수해 다른 기관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했다.
빅북 동아리는 주 1~2회 모여 한지, 우드락, 종이 등을 활용해 대형 그림책을 만든다. 한 권 완성에 6개월에서 1년이 걸리지만, 아이들이 자신들이 만든 책을 무대에 올려 동화를 구연할 때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 그 모든 수고가 보람으로 바뀐다. 책 보수 동아리는 개관 초기부터 활동해 왔다. 당시에는 자료와 기술 부족으로 시행착오를 겪었으나, 국립중앙도서관 자료보존센터의 고서 복원 과정을 참관한 이후 수준이 크게 향상됐다. 현재는 동구 관내 훼손 도서를 보수하는 것은 물론, 자원봉사자 교육과 다른 지역 도서관과 학교 출강까지 진행하며 명성을 얻고 있다.
이 작은도서관의 동아리와 자원봉사 인력은 지역 사회의 핵심 자원이다. 도서관 주간이나 독서의 달 같은 정기 행사와 계절별 프로그램에서 이들의 활약은 더 돋보인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필사 노트 만들기’와 ‘아크릴화 그리기’ 강좌는 동아리 회원이 직접 강사로 나서 진행한다. 또 독서삼품제는 책을 읽고 감상문을 제출하는 프로그램으로, 참가자에게 제공되는 독서 기록 노트 역시 책 보수팀이 직접 제작한 교보재다.
올해 상반기에만 운영된 프로그램이 60여개에 달한다. 강좌마다 등록 경쟁이 치열하므로 홈페이지나 현장을 통해 꾸준히 확인해야 한다. 평일에도 하루 평균 100여명, 주말에는 200여명 이상이 도서관을 애용한다. 여름방학 기간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독서캠프를 포함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이들 중에서 독서캠프는 도서관 규칙과 책 찾는 방법을 배우도록 돕는다. 단순한 놀이 같지만, 정보 활용과 지식 습득의 즐거움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다.
결국 꽃바위작은도서관은 단순한 책 보관소가 아니다. 주민이 스스로 문화 플랫폼을 만들고, 서로의 재능을 발견하며, 개인의 성장을 지역공동체의 자산으로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보여준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오늘날의 나를 만든 것은 마을의 공립도서관이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꽃바위작은도서관의 자원봉사자와 이용자들 또한 같은 마음일 것이다. 해안마을의 이 도서관은 규모는 작지만, 그 역할은 화암추등대처럼 크다. 앞으로도 이곳이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든든한 문화의 등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애란 칼럼니스트 문헌정보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