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골목에서 다시 피어나는 온기
저녁 무렵, 울산 남구 여천천 달깨비길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공업탑 일대의 바쁜 도로와 달리,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풍경은 조금 달라진다. 작은 카페 창가에 켜진 노란 불빛, 분식집에서 흘러나오는 고소한 내음, 문 앞을 쓸고 있는 가게 주인의 손길이 사람 마음을 붙잡는다. 재개발로 주변 풍경은 달라졌지만, 이 골목만큼은 여전히 사람 사는 냄새와 온기를 간직하고 있다.
요즘 들어 골목길 상권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코로나19와 경기 침체, 그리고 생활물가 상승이 겹치면서 소비 심리는 위축되고, 작은 가게들은 버티기에 급급하다. 정부가 내놓은 ‘민생회복 쿠폰’도 이런 배경 속에서 나왔다. 전국적으로 소비를 진작시켜 상권에 활기를 불어넣자는 취지다. 분명히 큰 틀에서 든든한 울타리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뿌려지는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지역의 골목 상권은 그 지역만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시민들과 더 가까이 만나는 방식으로 살아나야 한다.
지난달 18일부터 한 달간 울산 남구에서 열리는 ‘2025 달깨비길 맛집 스탬프 투어’는 그런 점에서 눈길을 끈다. 방법은 간단하다. 달깨비길 골목 속 가게 세 곳을 들러 스탬프를 모으면 선착순으로 할인권을 받을 수 있다. 얼핏 보면 단순한 이벤트 같지만, 그 안에는 몇 가지 따뜻한 의미가 담겨 있다. 우선 상인회가 직접 주관한다는 점이다. 누군가 위에서 기획해 내려보낸 행사가 아니라, 골목을 지켜온 사람들이 손수 머리를 맞대고 준비한 행사라는 데에 큰 힘이 있다. 그리고 소비자가 직접 골목을 걸으며 가게를 찾고, 상인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맛을 경험하면서 관계가 만들어진다. 단순히 ‘혜택을 받았다’는 차원을 넘어, 지역 가게와 시민이 연결되는 통로가 열리는 것이다.
사실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말은 거창한 구호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우리 동네 가게에서 밥 한 끼를 먹고, 작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사장님과 안부를 주고받는 소박한 일상 속에서 움튼다. 정부의 민생회복 쿠폰이 전국적인 희망을 전한다면, 달깨비길 스탬프 투어 같은 지역형 프로젝트는 생활 가까이에서 체감할 수 있는 온기를 준다. 두 가지가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소비자는 다시 골목을 찾고, 상인은 희망을 말할 수 있다.
달깨비길은 공업탑 복개천 인근에 자리 잡은 50여개 상가가 어깨를 맞댄 작은 터전이다. 카페, 치킨집, 호프, 분식집.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모두가 이곳의 이야기를 지켜내고 있다. 한동안 발길이 줄어든 골목이지만, 이번 행사를 통해 새로운 손님들이 찾아와 그 가게의 맛과 분위기를 경험한다면, 상인들에게는 무엇보다 큰 힘이 될 것이다. 단순히 매출이 늘어서가 아니다. ‘우리 가게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위로이자 응원이다. 나는 이 행사가 한 달짜리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 시도를 계기로, 지역 상권이 시민과 함께 살아 움직이는 지속 가능한 모델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나아가 달깨비길뿐 아니라 울산 곳곳의 골목마다, 주민들이 직접 주인이 되어 기획하고 참여하는 다양한 방식의 프로그램이 생겨나면 좋겠다. 그렇게 골목이 살아나고, 시민이 웃음을 나누는 순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민생 회복의 진짜 모습일 것이다.
골목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우리가 잠시 외면했을 뿐이다. 이번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달깨비길을 걸으며 다시 한 번 느껴보자. 작은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골목은 다시 살아나고, 우리의 삶은 조금 더 따뜻해질 것이다. 나는 달깨비길 맛집을 세 군데 들러 받은 쿠폰으로 고소한 땅콩과자 한 봉지를 사서 집으로 돌아간다. 손에 든 과자 봉지보다 더 따뜻한 것은, 골목 어귀마다 스며 있던 사람들의 온기였다. 작은 가게와 사람들의 웃음이 모여 만드는 회복의 힘,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삶의 진짜 맛이 아닐까. 그리고 그 맛은 잠시 스쳐가는 풍미가 아니라,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는 삶의 무게이자, 우리가 다시 걸어가야 할 길을 밝히는 불빛이다.
하미라 꿈틀공장 대표·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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