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면주칼럼]헌법 제도의 남용과 민주주의의 위기

2025-09-09     경상일보

한 국가의 민주주의의 척도는 시각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헌법학자들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권력을 견제할 조문과 제도적 장치의 존재를 바로 민주주의의 척도로 삼지는 않는다. 독재국가일수록 헌법은 민주적 조문이 넘치기 때문이다. 헌법학자들은 헌법 조문의 입법 정신이 현실 정치에서 어느 정도 반영되는가. 즉 헌법 규범과 헌법 현실의 일치 정도를 민주주의 척도로 삼는다. 이 분야에 정통한 예일대학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헌법이 아무리 민주적이어도 실제 정치에서 권력의 남용이 일어나고 시민 참여가 제한된다면 민주주의는 사실상 퇴보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헌법상의 탄핵, 계엄, 사면, 특별 검사 제도는 그 본질이 권력의 전횡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민주주의의 안전장치이다. 아쉽게도 정치 현실은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정쟁의 도구로 남용되고 있다. 헌법 규범과 현실 정치의 괴리가 너무 커서 민주주의의 위기가 초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탄핵제도는 헌법과 법률을 명백하게 위반한 고위 공직자를 견제하기 위한 최후의 장치이다. 민주당이 거대 야당이 된 것을 기화로 윤석열 정부를 붕괴시키기 위해 20여건의 고위 공직자에 대한 탄핵을 발의했으나 헌법재판소에서 대부분 기각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시도는 ‘헌법 수호 장치’인 탄핵제도를 정쟁의 도구로 전락시켜 헌법이 의도한 민주적 이념을 왜곡시키고 있다. 계엄 제도 역시 본래는 국가적 위기에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정치적 위기 때마다 계엄령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윤 대통령에 의해 현실화되고 말았다. 계엄이 국가 방위를 위한 제도에서 권력의 존속을 위한 위협 수단으로 남용된 것이다. 사면제도는 사회적 통합과 화해, 국가적 이익, 민생과 사회적 약자의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집권당 측 사람이라 해 명분 없는 사면의 단행은 일반 범죄자들과의 형평성과 법치주의를 침해하는 권력의 남용에 불과하다. 그 정치적 경위야 어떠하던 파렴치범에 불과한 조국과 윤미향의 사면이 이에 해당한다. 여·야가 명분 없는 사면 대상 명단을 주고받는 것은 헌법정신과는 거리가 먼 어두운 정치거래인 것이다. 특검제도 역시 본래 집권 세력의 권력형 비리를 투명하게 규명하기 위한 장치이다. 집권 세력의 권력형 비리를 같은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검찰이 수사할 경우 중립성과 투명성을 담보할 수 없다. 반대 세력이 지명한 특별 검사가 보충적으로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는 제도이다. 현재의 3대 특검은 집권 세력이 임명한 특별 검사가 정치적으로 몰락한 반대 세력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는 모양새이다. 이는 투명성을 담보한다기보다 정치 보복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특검제도 또한 권력에 맞서 진실을 찾는 숭고한 정신에도 불구하고 정쟁의 도구로 전락했다.

게다가 민주당이 추진한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은 헌법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다. 특정 정치 세력과 관련된 내란 혐의를 따로 떼어내 특별재판부에서 다루자는 것은 입법부가 사법권을 사실상 장악하려는 시도이다. 헌법이 인정하는 특별재판부는 제110조의 군사법원뿐이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특별 재판’을 만든다면 3권분립의 헌법정신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특별재판부 추진 논란은 헌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헌법을 허무는 자기 모순적 행태의 극단이다.

이러한 집권 여당의 국민 정서와 배치되는 법률의 양산은 헌법상의 다수결 제도에 근거하고 있다. 다수결 제도는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에 불과하다. 절차적으로는 토론과 협의가 전제돼야 하며 그 내용은 헌법정신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이를 망각한 다수결에 의한 지배는 ‘다수의 폭정’으로 제도의 남용이다. 현재의 정치권의 다수결 제도의 운용은 로버트 달이 지적한 헌법 규범과 현실의 괴리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결국 민주주의의 진정한 척도는 헌법상 제도의 정신이 현실 정치에서 얼마나 실현되느냐에 달려 있다. 헌법상의 제도가 정치적 도구로 왜곡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우리 헌정 질서는 무너질 것이고,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다. 로버트 달이 제안하고 있는 시민의 깨어있는 감시와 참여가 절실한 시점이다.

신면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