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건축문화제 릴레이 기고(3)]울산, 노잼이 아닌 ‘울산다움’으로

2025-09-10     경상일보

‘울산다움’의 건축은 무엇일까. 울산의 도시 구조와 건축의 모습은 대개 공업과 산업, 그리고 효율성을 중시한 흐름 속에서 형성되었다. 외지인의 눈에 비친 울산은 여전히 거대한 공업단지와 항만, 그리고 끝없이 늘어선 공장 굴뚝으로 기억된다. ‘산업수도’라는 강한 정체성은 울산의 성장과 발전을 이끌었지만, 동시에 도시의 이미지를 단순하고 차가운 풍경으로 고착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울산시민이 체감하는 울산은 조금 다르다. 아이들이 뛰노는 학교 운동장, 마을 어귀의 작은 회관,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찾는 도서관이나 문화시설, 동네를 따라 이어진 산책길 같은 일상 속 공간들이 시민의 기억과 경험에 자리한다. 외부인의 시선에는 산업의 도시로만 보일지라도, 울산시민에게 울산은 삶과 공동체를 품은 공간인 것이다. 그렇다면 건축인들이 시민에게 제시해야 할 울산다움은 무엇일까. 그것은 산업도시라는 위상을 넘어 사람과 환경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제안하는 데 있다. 태화강과 울산대공원, 동해안의 풍광과 같이 울산이 가진 자연과 지형을 살려내는 친환경 건축, 세대와 계층이 어울릴 수 있는 열린 공공건축, 그리고 일상 속에서 울산다운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생활건축이 필요하다.

건축은 단순히 집을 짓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도시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시민의 삶을 바꾸며, 도시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울산을 두고 흔히 붙는 별칭 중 하나는 ‘노잼도시’다. 산업도시로서의 성장은 빠르고 효율적인 공간을 만들었지만, 시민들이 즐길 만한 풍경과 경험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래서 “볼거리가 없다” “즐길 거리가 없다”는 인식이 굳어졌다. 그러나 이는 울산의 본모습을 온전히 보지 못한 단편적인 시선에 불과하다.

노잼이라는 꼬리표 아래에는 울산만의 진짜 매력이 숨어 있다. 태화강 국가정원은 도심 속에서 생태와 문화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고, 장생포 고래문화마을은 산업도시의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선사시대 인류의 흔적을 간직한 세계적 유산이며, 간절곶과 주전, 정자 일대의 해안가와 카페들은 도시의 젊은 감각을 불어넣는다. 동구의 대왕암과 그 숲길은 해안과 숲이 어우러진 매력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이렇듯 울산은 다른 도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자산을 이미 갖고 있다. 다만 그 공간들이 여전히 시민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아쉽다. 울산의 매력을 ‘숨은 보석’으로 남겨두지 않고, 일상의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감할 수 있는 도시로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이제 울산은 ‘노잼도시’라는 인식을 벗어나기 위해 건축과 도시 공간 속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창출해야 한다. 우리들은 시민이 머물고 소통할 수 있는 장소, 단순히 기능만을 충족하는 건물이 아니라 이야기가 담긴 공간을 고민해야 한다. 산업과 자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장소, 시민이 주체적으로 이용하고 가꿀 수 있는 열린 공간이 울산다움의 건축이어야 한다. 시민들에게는 건축문화제를 비롯한 다양한 도시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도시를 새롭게 경험할 기회가 필요하다. 태화강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길을 걸으며 도심 속 자연을 느끼고, 동구의 대왕암 숲길이나 정자 바닷가에서 일상의 여유를 발견하는 시간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건축이 일상 속으로 들어올 때, 울산은 단순히 ‘사는 도시’에서 ‘즐기는 도시’로 변화할 것이다.

‘울산다움’은 결코 노잼이 아니다. 다만 그 진짜 얼굴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숨은 공간을 찾아내고, 오래된 장소를 새로운 이야기로 덧입히며, 시민과 건축이 함께 도시의 미래를 만들어갈 때 울산은 재미와 매력을 동시에 품은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건축인들이 제시하는 울산다움은 결국 시민이 공감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내일의 울산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울산다움’ 그리고 다음. 오늘의 울산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내일의 울산을 상상하는 것. 그것이 울산 건축의 역할이며, 우리가 준비해야 할 미래다.

박영교 웨이브건축사사무소 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