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4장 / 의병장 윤홍명과 이눌(44)

2025-09-10     차형석 기자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수준이라고? 말솜씨도 제법이구나.”

“부탁이 있습니다. 도련님.”

“이 녀석아 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도련님이야? 그냥 장군이라고 불러라.”

“네, 장군님. 조정에 장계를 올리실 때, 울산땅에 사는 천민 양가 천동의 이름도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당연한 일 아닌가? 네가 아니었으면 이기기 힘든 싸움이었네. 내 기꺼이 네 이름을 올려주지. 면천법이 발표되었으니 도움이 될 게야.”

“감사합니다. 윤 장군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라니? 당치 않은 말이지. 너 혹시 내 밑에서 있을 생각은 없나?”

“송구합니다. 저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습관이 돼서 장군의 말씀을 받들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지. 이제 나이도 있으니 가능하면 어디든지 정착하거라. 다음에 또 보자구나.”

“네, 장군님.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부디 무탈하시기 바랍니다.”

1592년의 1차 전투에서 이언춘, 유정, 박인국, 류백춘 장군의 의병군이 승리한 이래 불패의 달령 전투는 윤홍명 장군 진영의 대승으로 끝났다. 전투가 끝난 후에 윤 장군은 조정에 올리는 장계를 썼고, 약속대로 천동의 공적도 세세히 적어 넣었다. 그런 연후에 윤 장군은 진영을 무룡산의 남쪽에 있는 백련암으로 옮겼다. 달령과 무룡산은 다시 정적에 휩싸였고, 국화는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1595년 2월27일(음력)에 다시 이눌 장군이 보낸 전서구가 왔다. 경주 토함산 자락에 있는 영지 아랫마을에 왜병들이 있으니, 그곳에서 일천 보 동남쪽으로 오라는 전갈이었다. 천동은 늘 그랬듯이 행선지는 말하지 않고 다녀오겠노라는 말만 하고 서둘러 동굴집을 나섰다. 영지 아래에는 왜병 300여 명이 조총으로 무장을 한 채 진을 치고 있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의병이나 조선관군의 습격에 대비하는 듯 사방 수백 보 내에 초병도 여러 명 세우고 있었기에 공격이 쉽지 않아 보였다.

“양 장군! 어서 오시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대장군!”

양반 출신의 의병장이 백정 출신의 천동에게 공대를 하며 그를 맞이했다. 몇 번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그를 이눌 장군은 성심을 다해 장군으로 예우했다. 그렇지만 군기의 혼란을 생각해서 둘만의 은밀한 만남에서만 그리하였다. 지금 이 자리도 수하가 전혀 배석하지 않은 둘만의 자리이기에 천사장 이눌 장군은 천민인 그에게 거리낌 없이 공대를 한 것이다. 간단한 수인사를 나눈 후에 이눌 장군은 은밀히 천동에게 작전지시를 했다. 작전지시를 다 숙지한 천동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는 것을 기회 삼아 그동안 장군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얘기를 시작했다.

“장군! 그동안 여쭈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지금 해도 되겠습니까?”

“아직 작전을 시작할 때까지는 시간이 좀 있으니 말해 보게나.”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