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울주 추락사고, 안전고리만 걸었어도 막을 수 있었다
최근 정부는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지난 7월29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산재 사고는 사회적 타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반복적으로 사망사고를 일으킨 기업에 대해 영업정지, 공공입찰 제한, 매출액 연동형 과징금 부과 등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럼에도 연이어 대형 산재사망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경북 청도 열차 충돌사고(사망 2명·부상 5명), 순천 레미콘 질식사고(사망 2명·중상 1명) 등 대형사고가 연달아 발생했다.
울산의 현실은 더더욱 심각하다. 2025년 2분기 산재사망자 수는 13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62.5%가 증가했다. 17개 시·도 중 세 번째로 높은 수치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8월23일 울주군 삼남읍 교회 신축공사 현장에서 50대 노동자가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사고 당시 재해자는 자재를 반출하던 노동자가 4층 옥상 슬라브 단부 개구부에서 20m 아래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단 한 번의 균형 상실이 비극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번 사고는 옥상 슬라브 단부 개구부에서 자재를 반출하던 중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자재 반출작업의 특성상 슬라브 단부에 설치된 안전난간을 임시로 해체한 상태에서 작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추락 위험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추락을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이고도 간단한 방법이 있다. 사업주는 사전에 안전대 부착설비를 설치해 작업자가 안전대를 걸 수 있게 해야 하며, 작업자는 반드시 안전대 고리를 부착설비에 연결한 채 작업해야 한다. 이 조치만 철저히 이루어진다면, 단부 개구부에서의 추락사고는 충분히 예방 가능하다.
문제는 이러한 원칙이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무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월8일 경기도 의정부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재해자가 단부 개구부에서 낙하물방지망 해체 작업 중 18m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또 지난 4월21일 대구의 건축현장에서는 재해자가 낙하물방지망 설치 작업 중 슬라브 단부 개구부에서 14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공통점은 명확했다. 방호조치 미비, 안전대 부착설비 부재였다. 해외 선진국들은 이런 부분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미국은 건설현장에서 개구부를 대표적인 추락위험 요소로 분류하고 엄격한 규정을 두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청(OSHA) 규정에 따르면 지상 1.8m 이상에서 근로자가 작업하는 경우 반드시 안전난간, 안전망, 개인용 추락방지장치 중 하나를 설치·사용해야 한다. 안전난간 설치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반드시 안전대를 착용하고 지지로프나 앵커포인트에 연결해야 한다.
캐나다 역시 개구부를 추락위험구역으로 분류하여 법적으로 강력하게 관리한다. 슬라브 단부나 개구부에서 작업하려면 사전에 위험성 평가와 작업허가서를 발급받아야 하며, 원칙적으로 안전난간을 설치해야 한다. 특히 캐나다의 특징은 안전대 착용을 근로자의 선택이 아닌 고용주의 법적 의무로 규정한다는 점이다. 고용주는 반드시 안전대와 지지로프, 앵커포인트를 현장에 설치하고 점검해야 하며, 감독관이 이를 위반한 현장을 적발하면 즉시 작업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또한 개구부에서의 작업 전에는 반드시 안전교육을 실시해야 하고, 현장 감독자는 작업 전·중·후 개구부 방호 상태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
이번 사고는 안전대 고리만 걸고 작업을 했어도 예방 가능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기술이나 장비의 부족이 아니다. 현장의 안일한 태도, ‘조금만 빨리 끝내자’는 속도 논리, 비용 절감을 위한 안전조치 축소가 사고를 반복시키는 근본 원인이다.
안전대 부착설비 하나만 설치해도, 안전대 고리 하나만 걸어도 살릴 수 있는 목숨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잃고 있다. 한 명의 노동자가 추락할 때마다 그 가정은 절망 속에 무너지고, 사회는 또 하나의 상처를 떠안는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약속이다. 이번 울산 사고가 남긴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의 현장은 지금, 슬라브 단부 개구부에서 노동자가 안전대 고리를 걸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가.
정안태 울산안전(주) 대표이사 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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