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감 잃은 고공농성, 낡은 투쟁은 고립을 자초할 뿐

2025-09-12     경상일보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결국 협상 테이블을 엎어버리고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임금 인상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부분 파업과 공동 파업을 넘어 전면 파업을 강행한 것이다. 특히 노조는 2021년 이후 4년 2개월 만에 골리앗 크레인 점거 농성이라는 극단적인 초강수까지 두며 사측을 맹렬히 압박하고 있다.

노조는 임금 인상뿐만 아니라, 정년 65세 연장이나 주 4.5일 근무제와 같이 현실적으로 합의가 어려운 요구들까지 내세우고 있다. 특히, 내년 3월 시행 예정인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을 등에 업고 노조의 강경 투쟁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1990년 4~5월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의 골리앗 크레인 농성은 산업화 시대, 노동자의 마지막 저항 수단이자 사회적 연대를 이끌어내는 상징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농성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사회적인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2025년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과거 노동운동의 상징도 ‘집단 이기주의’라는 낯선 이름으로 변질되고 있다. 더 이상 ‘투쟁’이 아닌 ‘기득권 사수’로 비치는 까닭이다.

슈퍼사이클의 끝자리에 선 글로벌 조선업 경기는 언제든 곤두박질칠 수 있는 살얼음판과 같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오직 ‘임금 몇 퍼센트 인상’이라는 목표에만 매몰돼 고공에 오르는 모습은 더 이상 시민들의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 이는 사측을 압박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보다, 오히려 노동운동 전체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과 반감만 키우는 자충수가 될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노조가 스스로를 사회적 약자로 여기는 과거의 인식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이미 동종업체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는 그들이 더 높은 임금을 위해 불법 파업을 하는 모습은 ‘귀족노조’라는 비판을 자초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산업 생태계 전체를 위협하는 동안,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협력업체와 고통받는 지역 소시민들의 현실은 그들의 구호에 담겨있지 않다.

노동조합이 진정으로 사회적 지지를 얻고자 한다면, 이제는 투쟁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임금 인상’이라는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산업 현장의 안전 문제, 청년 세대를 위한 고용 안정, 지속가능한 근로환경 개선 등 사회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시대적 과제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낡은 전술과 편협한 구호에만 갇혀 있다면, ‘고립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