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민의 불역유행(不易流行)(27)]그래 역시! 위대한 예술 도시 울산을 만들자

2025-09-12     경상일보

“시간이 날아다닌다”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Time flies.” “세월이 유수처럼 흐르듯 빨리도 가는구나”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주헝가리 대사를 마치고 울산시 국제관계대사로 부임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 반이 흘렀다. 35년간의 외교부 생활을 마무리하고 울산대학교 강의를 맡은 지 벌써 3학기째다. “인생이 구운몽 같더라”는 넋두리를 하자는 건 아닌데 환갑을 지나고 보니 그 말뜻이 새삼 와닿는다.

며칠 전 서랍을 정리하다가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함께 찍은 빛바랜 사진 한 장을 우연히 발견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지난번과는 달리 유심하게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친구들 한 명, 한 명이 50여년 전 앳된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담임 선생님이 누구셨는지 하는 기억들이 신기하게도 하나둘씩 소환됐다.

호철이네 무화과나무와 짖지 않고 늘 잠만 자던 멍멍이, 꼬불꼬불 미로 끝자락에 단아하게 터 잡은 집에 언제나 반갑게 맞아 주시던 정희 어머님, 홍수환 선수가 되겠다며 방과 후 한바탕 복싱 매치로 자웅을 겨루던 이준이, 집 학교 앞 문방구,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하며 슬쩍 과시하던 춘이네 예식장, 빠삐용 감옥을 방불할 높은 펜스 뒤로 감춰진 할리우드 저택 같은 외국계 정유회사 사택에 살던 부러움의 대상 시권이, 손자 친구들이 왔다며 갈 때마다 사탕 한 줌을 주시던 주언이 할머니, 서울 표준말이 얼마나 이쁜지를 알려준 상범이네 가족들, 모두가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온다.

1970년대 중반 울산의 인구는 지금의 절반 수준이었다. 물론 1962년 공업화와 함께 10년새 다섯 배나 몸집을 불렸고, 거리마다 장터마다 동네 공터 어디에서도 엄마 등에 업힌 아기들과 날 잡아 보라며 날쌔게 설쳐 다니던 머시마들, 고무줄과 공기놀이를 하며 재잘대던 여자애들이 넘쳐나던 시기였다. 열심히 공부하면 커서 공무원이 돼 부자가 될 것으로 믿었던, 개천에서도 용이 나던 시절이었다. 공업화와 함께 광폭 성장해 온 울산은 1995년 울주군과 통합했고 1997년 울산광역시로 승격했다.

울산이 대한민국 산업 수도임을 의심하는 한국인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이 6만달러로 국내 최고 수준이고, 전국 평균의 두 배 정도 된다. 한때 산업화로 인한 심각한 수질오염으로 몸살을 앓았던 태화강은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체계적인 복원 노력 결과, 20년이 지난 지금은 법적인 제약만 없다면 어린 시절처럼 수영도 하고, 잡은 물고기를 맘껏 먹을 수도 있게 됐다.

이렇듯 생태환경 정상화를 평가받아 2019년 국내 국가 정원 두 곳 중 하나가 됐고, 2028년 4월부터 10월까지 국제원예생산자협회 주관 국제정원박람회도 예정돼 있다. 산업화 과정의 또 다른 진통이었던 산업계의 노동환경과 산업안전 분야도 상당 수준 개선됐다. 또한 외부 사람들에게 기형어와 악취의 온상 태화강, 벼 생산이 불가능해 방치된 삼산 평야, 가득 피어오른 시커먼 매연으로 낮도 밤 같았던 온산 공업단지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치부됐던 오명도 이제는 모두 역사의 한 장으로 묻혀버렸다. 눈부시게 그리고 세련되게 발전해 온 울산은 1960년대 태어난 우리 세대들에게는 진정으로 자랑스럽고 소중하다.

올해 7월12일 프랑스 파리에서 유네스코 제47차 세계유산위원회는 반구천 암각화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결정했다. 이제 반구천은 대한민국 울산의 유산이 아니라 세계 시민들과 함께 즐기고 또한 지켜가야 할 인류 공동의 문화재가 됐다. 반구천의 절벽 바위에는 7000년 전 선조 예술인들이 남긴 300여점의 선사시대 작품들이 새겨져 있다. 이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족들과 선비들이 방문해 시를 읊고 글을 썼으며 귀한 예술 작품들을 남겼다.

울산은 조선시대 병영, 수영, 도호부를 전부 가진 유일한 지방이었다. 그만큼 부자동네였다. 1962년 2월3일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을 시작으로 출발했던 산업도시 출정식 훨씬 이전부터 뿌리 깊은 역사적 토대를 갖추고 있었다. 울산의 성장동맥 속에는 이미 산업과 문화적 융성의 DNA가 있었던 게다. 제4차 산업혁명시대의 냉엄한 현실에 노출된 울산은 산업 고도화와 다각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더불어, 반구천의 유네스코 등재와 2028년 국제정원행사 개최라는 겹경사를 계기로 명실공히 ‘꿀잼울잼 법정문화도시 울산(Ulsan, Super Fun-tastic!)’으로도 거듭나야 한다.

2028년 이후 여천천 산업 쓰레기 매립지 위에 세워질 오페라하우스는 울산의 새로운 명물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당당하고 우아한 예술의 전당은 건물 디자인과 실내 인테리어 만큼이나 세계적 수준의 우수한 음악 작품을 매주 선보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건물 설계가 완성될 무렵엔 이미 오페라하우스 개막식 갈라 쇼와 그 이후 4~5년간 연주 프로그램의 주간 리스트가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쇼팽과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 차이콥스키와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리스트 음악원 등과의 가급적 빠른 접촉이 바람직하다. 해외 미술 분야에서는 지난해부터 시립미술관에서 존 원, 빌스, 제우스, 세퍼드 페어리, 토마 뷔유 등 국제적인 작가들의 전시회가 계속되고 있고 동 계기에 울산을 방문한 그들의 벽화 작품들이 어느새 시내 곳곳에 10개가 넘게 남겨져 있다. 이러한 과정과 성과를 음미하고 있는 필자의 눈에는 세계적인 어반아트 작가들의 벽화 작품들로 ‘지붕 없는 미술관’이 가득한 문화도시 울산의 밝은 미래가 보인다. “그래, 역시 울산!”에 걸맞는 예술도시 울산을 만들어 가자.

박철민 울산대 교수 전 울산시 국제관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