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82)청산도 절로 절로-김인후(1510~1560)

2025-09-12     권지혜 기자

자연은 절로 흐르고 정치는 굽이치고

청산도 절로 절로 녹수도 절로 절로
산 절로 수 절로 산수 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절로
<병와가곡집>

 

사람의 일이 자연의 일같이 절로 나고 절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산도 물도 절로 나서 절로 흐르는데 인간도 그 가운데 절로 태어나 절로 자라 자연으로 저절로 따라가기를 원한다. 그것마저도 쉽지 않은 것이 인간사 세상만사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나랏일도 굽이마다 발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이 역사다.

조선의 문예부흥기를 영조, 정조시대라고 일컫는데 정조대왕이야말로 붕당정치에 희생되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직접 보아온 왕으로서 탕평책, 규장각이란 교육제도와 과학기술 발전을 도모한 왕이었다.

문화융성으로 나라 기강이 안정기에 들 즈음에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에 온 국민이 슬퍼했다. 그 가운데 11세의 어린 순조가 즉위하니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가 대왕대비로 4년간 증손자 순조 뒤에서 수렴청정을 했다.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15세에 66세의 영조와 혼례를 치러 영조의 계비가 된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은, 신유박해 즉 천주교 탄압은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한 숙청 작업이었다. 정약용은 유배됐고 정약종 등 천주교인들이 처형됐다. 정순왕후는 그 밖에도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과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동생을 처형시켰다.

정조가 설치한 왕의 호위군대 장용영(壯勇營)을 폐지하고 규장각을 축소하고 정조가 내쳤던 사람들을 대거 중용해 측근에 앉혔다.

새파란 젊은 청춘을 51세 나이 차이 나는 영조의 왕비로 살면서 왕자와 공주를 낳은 것도 아니었다. 오빠인 김귀주가 정조대왕으로부터 숙청당하면서 얻은 젊은 여인의 한을 정치적 보복을 통해 풀며 조선 문화융성의 기운을 꺾어버린 것이다.

천하의 대문장가 김인후는 명종 때 홍문관 교리, 성균관 전적으로 재수 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산 절로 수 절로 산수 간에’ 절로 나기를 노래했다.

온 국민은 절로 나서 절로 늙어가는 자연의 이치대로 누리기를 바랄 뿐이건만, 역사는 돌고 돌아 혁신이라는 미문의 정책 아래 정치보복은 끝이 없다. 개인의 원한 정도로 그 갚음이 끝나면 다행이지만 송두리째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소시민은 간절히 바란다.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