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샘의 시가 있는 교실 (1)]“조금 더 내가 되어보고 싶어요”
필자는 중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를 읽으며 감상을 나누고 있는 수업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직접 찾아온 시를 칠판에 적고, 이 시를 찾아온 이유를 친구들에게 말한다. 그러면 나머지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느낀 자신의 감상을 시 공책에 적는다.
그 과정에서 각자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친구를 조금씩 이해해간다. 짧은 시 한 줄이 서로의 마음을 열어가는 감동적인 교실의 모습을 소개하려고 한다.
어느 조용한 고백
중학교 1학년인 한 아이는 평소 조용하고 성실한 학생이다. 그런 아이가 어느 날 국어 시간에 권지영 시인의 시 한 편을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새 학기마다 던져지는 질문 / 장래 희망 //
… 꼭 뭐가 되어야 할까 // 아직까지 난 / 찾고 있는 중인데 //…조금 더 내가 되어 보고 싶은데…
- 권지영, <괜찮아, 나니까> 중에서
모두 함께 시 낭송을 마친 후, 필자는 시를 소개한 아이에게 왜 이 시가 공감됐는지 물었다. 아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요즘 어른들이 장래희망이 뭐냐고 자주 물어보세요. 솔직히 저는 아직 제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그런데 갑자기 꿈을 정하라고 하니까 부담스러워요.”
그 말에 교실이 조용해졌고, 다른 아이들도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제각기 시 공책에 감상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시 공책 소감 내용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서 이 시가 공감됐다. 다른 애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하는 것 같아서 부러웠는데”
“나는 하고 싶은 게 매일 바뀐다. 그런데 어느 게 진짜 내 마음인지 모르겠다”
“부모님이 의사가 좋겠다고 해서 꿈을 의사로 적긴 했는데, 사실 내가 의사를 정말 하고 싶은건지 잘 모르겠다”
“이 시를 읽고 나니까 나 자신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자꾸 꿈이 뭐냐, 장래희망이 뭐냐라고 물어보는 게 스트레스였는데, 이 시에서 장래희망이 ‘나’라고 하는 게 멋있어 보였다”
아이들의 진짜 마음
아이들의 꿈과 끼를 찾기 위한 자유학기제가 1학년 한 학기 동안 시행되지만, 다양한 체험과 탐색을 마친 아이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다 해봤는데 뭐가 좋은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저는 체험해 본 것 중에 딱히 재미있는 게 없어요” “저는 검사할 때마다 결과가 달라요. 어떨 때는 예술형, 어떨 때는 탐구형. 도대체 진짜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아이들의 반응을 보며 깨달았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쉽게 묻지만, 정작 아이들은 지금의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 상태일 수 있다는 것을.
“얘들아, 자기 자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먼저 이루어져야 꿈도 찾을 수 있는 거 아닐까? 이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조금 더 내가 되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리고 아주 작은 것부터 관찰해 보라고 했다. 오늘 하루 중 언제가 가장 기분 좋았는지, 어떤 수업 시간에 집중이 잘 됐는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즐거운지…. 이런 것들을 한 줄씩이라도 적어놓으면 나중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고 말이죠. 어떤 아이가 “저는 그림 그릴 때 시간 가는 줄 몰라요”라고 하자, 저는 “바로 그런 순간들이 중요한 단서가 되는 거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했다는 건 그게 너와 잘 맞는다는 신호일 수 있어”라고 답했다.
‘조금 더 내가 되어’본다는 것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문득 ‘이 고민이 과연 중학생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어른들도 누군가로부터 ‘당신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아이들처럼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여지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 아이들에게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제 자신도 가끔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김미성 외솔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