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이기철 ‘고등어’
새로 사 온 등 푸른 고등어를 보면
나에게도 저렇게 등이 푸른 때가 있었을까
만 이랑 물결 속에서 대웅전 짓는 목수의 대팻밥처럼
벌떡벌떡 아가미를 일으키던 고등어
고등어가 가보지 않은 바다는 없었으리라
고등어가 가면 다른 고기들이 일제히
하모니카 소리를 내며 마중 나왔으리라
고등어가 뛸 때 바다가 펄떡펄떡 살아나서
뭍의 뺨을 철썩철썩 때렸으리라
푸른 물이랑이 때리지 않았으면
등이 저렇게 시퍼렇게 멍들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나에게는 흔한 일이지만
그래, 바다의 치맛자락이 만 겹이었다고
아직도 입을 벌리고 소리치는 고등어
고등어가 아니면 누가 바다를 끌고
이 누추한 식탁까지 와서
동해의 넓이로 울컥울컥 푸른 바다를
쏟아놓을 수 있을까
식탁까지 전해진 바다의 힘찬 생명력
고등어는 바다를 가장 많이 닮은 물고기다. 등의 푸른색이 바다와 닮았고, 떼 지어 날렵하게 헤엄치는 모양새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의 움직임과 닮았다. 시인은 벌떡벌떡, 펄떡펄떡, 철썩철썩, 울컥울컥 같은 흉내말로 고등어와 파도의 움직임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푸른색은 청춘의 색이다. 바다가 좁다고 무리 지어 헤엄치는 고등어처럼 거리가 좁다고 몰려다니던 한때가 있었다. 고등어의 아가미를 대팻밥이라고 표현한 점도 재미있다. 다른 것도 아닌 대웅전을 짓는다니, 솜씨 좋은 대목의 대팻날에 써억써억 갈려 떨어지는, 고등어의 붉은 아가미를 닮은 적송의 목편(木片)이 생각난다.
시에서는 고등어의 푸른 등이 파도가 때려서 시퍼렇게 든 멍이라 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 바다의 물무늬 아닐까. 바다의 만 겹 치맛자락이, 그 오묘한 푸른색이 층층이 찍히고 물든 것 아닐까. 그래서 고등어를 만지면 손에 푸른 바다가 만져지는 것 같고, 식탁 위에 차려진 한 접시의 고등어에서 우리는 동해의 창랑과 서해의 낙일까지 느껴보는 것이다.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