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금 칼럼]사유(思惟)의 부재와 ‘악의 평범성’

2025-09-16     경상일보

대부분의 중요한 결정은 주로 하향식(top-down)으로 결정된다. 대통령이나 시장이 대략의 방침을 결정하면 실무자인 관료들이 구체적인 내용을 추가하는 식이다. 정부만이 아니다. 기업이나 대학에서도 이런 식의 결정이 흔하다. 이 때 실무자들은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층의 결정에 대해 별다른 토를 달기 어렵다. 이들의 명령이나 지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이행할 것인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권위주의나 전체주의적 경향이 강할수록 이런 현상이 더욱 확실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결정 권한을 쥐고 있는 고위 결정자가 늘 바람직한 목표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반민주적이거나 비윤리적인 방침을 제시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불합리하고 엉뚱한 지시를 내리는 경우도 흔히 있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한 문제를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나치 친위대 중령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럽의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폴란드의 여러 수용소로 수송하는 일을 맡았었다. 전후 그는 남미로 도주했으나 이스라엘의 모사드에 의해 체포돼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무려 600만명의 유대인을 사지로 몰아넣은 아이히만은 그저 평범하고 성실한 관료였다. 무서운 괴물이 아니었다. 아이히만이 저지른 악은 악마의 악이 아니라 ‘관리자의 악’이었다. 그는 유대인을 말살하려는 홀로코스트의 결정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수송하는 철도망을 조직하는 책임자였을 뿐이다. 그는 재판에서도 이런 주장을 되풀이했다.

아렌트는 이런 유형의 악이 등장하는 이유로 선과 악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사유의 부재’(thoughtlessness)를 들고 있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한 일이 거대한 범죄임을 깊이 성찰하지 않고, 단지 명령에 복종하고 법과 규칙에 따랐을 뿐이다. 아렌트는 여기서 ‘악’이 특별한 존재의 전유물이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복종할 때 누구나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였다.

이제 우리의 경우를 돌아보자. ‘평범한 악’은 여러 영역에서 발견된다. 자동차 제조사가 유해가스 배출을 조작해 소비자를 기만하거나, AI 기업이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해 인종차별을 자행하는 것은 상부의 지시에 대한 무비판적 순응의 결과다. 실무자들은 단지 회사의 내규나 관례에 따랐을 뿐이라거나 아니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강변한다.

정치·행정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흔히 정책 실패가 발생했을 때 ‘규정대로 했다’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은, 아이히만이 했던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과 다를 바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지도부에 의해 방침이 결정되면 소속의원들의 자유로운 의사표시가 불가능하다. 대통령이나 시장과 같은 권력자가 지시하면 그 자체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는 기준이 돼 버린다. 가령 특별재판부의 위헌 여부, 일회성 현금지원의 경제적 효과 등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의견을 표명하면 일거에 모든 입장이 정리돼 버린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이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할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판단이 추가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 사유를 멈춘 채 그저 따를 뿐이다.

아렌트가 경계한 ‘사유의 부재’는 이미 우리 사회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특히 최근 우리의 정치행정문화가 극단적 대립과 함께 전체주의적 경향을 띠면서 개인의 도덕적 판단보다 체제와 진영의 논리에 복종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어서 더욱 우려스럽다. 이러한 점에서 “지금 생각하기를 멈추고 있지 않은가? 지시와 관행에 무비판적으로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렌트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강력한 권력자의 결정이나 지시라고 해도, 이것이 사회적 분열을 초래하지는 않을까, 아니면 엄청난 경제적 낭비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등의 의문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 또는 정치세력일지라도 그들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옳고 그름을 성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일반 시민들의 비판적 사유와 책임 있는 행동이야말로 ‘평범한 악’을 막는 최소한의 방파제라 할 수 있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