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4장 / 의병장 윤홍명과 이눌·보수상 서신 5호(47)
천동은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잠시 그의 품 안에 안겨있던 그녀가 그의 포옹을 풀며 말했다.
“토끼고기나 먹자.”
“네.”
천동은 식사 후에 그녀와 놀아줄까 하다가 그냥 책을 읽었다. 그가 읽는 것은 <육도삼략(六韜三略)>이다. 육도삼략은 중국 주나라 무왕을 도와서 천하를 통일한 태공여망(본명 강여상)이 지은 <육도>와 황석공이 지어서 장량에게 바쳤다는 <삼략>을 한데 묶은 것이다. 중국 고대병학의 최고봉인 <무경칠서(武經七書)> 중의 이서(二書)다. 조선시대 무과에 응시하려는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육도삼략을 읽고 그 뜻을 강론해야 했다. 바로 그 책을 지금 천동이 읽고 있는 것이다. 국화도 그 책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친정 오라비가 늘 곁에 두고 읽었었기 때문이다.
양반도 아닌 천동이 글을 읽는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놀랍고 이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응시 자격이 없는 그가 육도삼략을 읽는 건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늘 그랬듯이 국화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가 먼저 말해주지 않는 한 묻지 않을 작정이다. 그렇게 며칠을 무서만 보던 그가 그녀에게 송내마을에 다녀오겠노라고 말하고 동굴을 나섰다.
“이번에는 며칠 걸리는 거야?”
“글쎄, 한 사흘 안에는 돌아올게요.”
“알았어, 잘 다녀와요.”
국화 누이가 전에 없이 동생인 자신에게 존대를 하는데도 천동은 그것을 알아듣지 못했다.
산 아래로 내려가면서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 푸른 새싹들이며, 나뭇가지에 돋아나기 시작한 새순은 그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멀리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냄새도 향기롭게 느껴졌다. 달령에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있었다. 저 꽃을 한 바구니 따다가 국화 누이와 화전을 부쳐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달래 꽃밭에서 한숨 자고 가려다가 천동은 이내 생각을 바꾸고 그냥 걸었다.
마을 뒤편에 다다르자 죽은 줄만 알았던 동무들의 모습이 몇 명 보였다. 천동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나는 듯이 달려갔다.
“야, 부지깽이, 먹쇠, 죽지 않고 살아있었네.”
“천동아, 너도 살아있었구나.”
동무들은 서로 반가워서 어찌할 줄 모르며 부둥켜안고 땅바닥에 뒹굴었다. 그들은 그간의 얘기들을 풀어놓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어댔다.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