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영의 컬러톡!톡!(44)]민화 속 호랑이와 까치 색채의 변천사

2025-09-17     경상일보

조선시대 서민들의 집 벽을 장식했던 그림이 있다. 바로 ‘민화’다. 민화는 소망과 복, 장수를 바라는 벽사진경(벽邪進慶)의 염원이 담긴 대중적 실용화로, 그 중에서도 호랑이와 까치가 함께 등장하는 ‘작호도(鵲虎圖)’는 한국 민화를 대표하는 그림이다.

민화의 색채는 조선시대 궁중 그림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궁중화가 절제되고 우아한 색채를 추구했다면, 민화는 선명하고 다양한 색채를 거침없이 사용하여 서민들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고, 자유롭고 조화로운 색채 배색을 통해 풍부한 색채 표현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우스꽝스럽게 그려진 바보 호랑이와 당당한 까치의 모습 속 색채에는 서민들의 삶과 꿈, 권력에 대한 풍자가 모두 담겨있다. 최근에는 전통을 넘어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민화 속 호랑이와 까치에 대한 관심이 국내외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호랑이와 까치의 색채 변화 속에는 우리 문화의 창조적 계승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나라 전통민화의 색채는 음양오행사상에 바탕을 둔 오방색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닌 우주 질서와 자연 원리를 반영한 상징 체계였다. 민화 속 호랑이는 주로 황갈색과 검은 줄무늬로, 까치는 검은 몸체에 흰 배, 푸른 광택의 날개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색채 선택에는 악을 물리치고 복을 부른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신재현이 그린 ‘호랑이와 까치’는 조선 후기 작호도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호랑이는 연한 황토색 바탕에 먹으로 그은 검정 줄무늬가 특징적이며, 바보스러운 표정을 강조하는 선명한 빨강의 혀와 코가 해학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까치는 광택 나는 검은 깃털과 하얀색의 배로 표현되어 전통 색채 미학의 절제미를 보여준다.

반면 최근 각광받고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호랑이 ‘더피’는 기존 전통을 과감히 탈피한다. 선명한 파란색으로 칠해진 ‘더피’는 전통적 호랑이 색채 관념을 완전히 뒤엎는다. 이는 영화 속에서 착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푸른 빛과 어우러져, 색채가 캐릭터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현대적 요소로 활용됨을 보여준다. 까치인 ‘서씨’ 역시 여섯 개의 눈을 가진 초자연적 존재로 그려지며 환상적인 색감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색채 변화는 시대정신의 반영이다. 색채가 전통민화에서 우주 질서와 조화를 나타냈다면, 현대 애니메이션에서는 개성과 차별화를 드러내는 표현 수단이다. 더피의 파란색은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전통 사회에서 수평적이고 다원적인 현대 사회로의 변화를 형상화한 것이다.

호랑이와 까치의 색채 변천사는 우리 전통 민화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서민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았던 오방색 체계가 현대에 와서 자유롭고 창의적인 색채 언어로 냈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색채 문화의 전통성을 간직하면서,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창조적 재해석이 필요하다.

신선영 울산대학교 교수·색채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