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의 생각의 窓]경(輕)·중(重)·완(緩)·급(急)
어느 직장에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두 사람이 있다. A씨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하는 스타일이다. 하루 종일 자료를 검색하고 서류를 작성하는 등 쉴 틈 없이 일하지만, 직장에서 ‘능력자’로 인정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끔 질책을 당하기도 한다.
한편 B씨는 겉보기에는 일을 대충 하는 듯하다. 항상 여유 있게 행동하며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는 주변으로부터 ‘일 잘하는 직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기획력이나 경험 못지않게 중요한 요인은 바로, 각 업무에 대한 ‘경중완급’을 얼마나 정확히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느냐의 문제라고 본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각 업무의 경중과 완급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면, 사소한 일에 매달리다가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치기 쉽다. 또한 보고의 타이밍을 놓쳐 상사에게 질책을 받을 수도 있다. 반대로 큰 그림을 보며 무엇이 본질이고,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은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B씨와 같은 타입의 사람들은 좋은 성과를 내고 조직에 기여하며, 자연스럽게 인정도 받는다.
이러한 원리는 직장인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주위를 보면 항상 허둥대면서도 일을 제때 끝내지 못하고, 약속 시간에도 늘 늦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닥치는 대로 즉흥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아이젠하워 메트릭스(Eisenhower Matrix)’라는 것이 있다. 이는 시간 관리에 매우 유용한 도구로,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제안한 방법이다. 이 도구는 업무를 ‘긴급하고 중요한 일’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 ‘긴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 ‘긴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일’의 네 가지로 분류해 어떤 일에 집중해야 할지를 판단하도록 돕는다.
모든 일을 이처럼 명확히 분류할 수는 없겠지만, 개략적으로라도 업무를 나누고 우선순위를 설정해 계획적으로 일하면 훨씬 효율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 매트릭스를 활용하면, 우리는 ‘긴급하고 중요한 일’에는 즉시 대응하고,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은 시간을 들여 계획적으로 처리하며, ‘긴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최소한의 시간만 투자하고, ‘긴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일’은 가능한 피하면 된다.
세계적인 자기계발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스티븐 코비는 이를 ‘소중한 것 먼저 하기(First Things First)’라고 설명한다.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에 쫓기기보다, 비록 급하지 않더라도 진정으로 중요한 일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원리이다. 이 기준이야말로 경중을 올바르게 가려내는 지혜라 할 수 있다.
또한, 때로는 ‘완급’을 잘 판단해야 할 때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시급을 요하는 ‘보고’이다. ‘보고는 타이밍’이라는 말이 있듯이, 보고 내용 자체보다도 언제 보고하느냐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적시에 보고해야 비로소 가치 있는 보고가 되며, 그 시기를 놓치면 오히려 조직에 큰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윤은기 박사는 시간 관리 기법을 ‘시테크’라고 부르며, 돈을 관리하듯 시간을 투자하고 운용하는 지혜를 강조했다. 돈은 잃더라도 다시 벌 수 있지만, 시간은 한 번 흘러가면 결코 되돌릴 수 없다. 따라서 시간의 투자처를 잘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성공의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뛰어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시간을 관리하고 계획을 세워 실천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시간에 끌려 다니며 하루를 허비하곤 한다. 이제는 시간을 주도적으로 관리하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설정해야 할 것이다.
“시간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은 인생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경중완급을 잘 분별하고, 소중한 일과 시급한 일부터 차근차근 실행해 나간다면, 우리는 시간에 휘둘리지 않고 시간을 주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기원 전 울산시 기획관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