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생각]공존의 시간 속에서

2025-09-18     경상일보

무더운 여름의 한복판. 가까이 있는 고분의 능선이 햇살에 번져 있었다. 이미 달궈진 아스팔트를 지나, 서둘러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 고분의 천년이란 시간의 무게와 안쪽 현대식 건물의 시원한 공기가 한순간 교차했다. 최근에 경주에 문을 연 오아르 미술관이었다. ‘고분을 품은 미술관’이라고 소개돼 있었다. ‘고분’과 ‘현대’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가 어떻게 조화를 이뤘을까 궁금해졌다.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시선을 붙든 것은 거대한 통유리 벽이었다. 그 너머로는 고분의 완만한 곡선이 흐르듯 드러나 있었고, 유리창을 통과해 들어오는 바깥의 빛은 벽면을 따라 흘러내리며 전시장 안에 또 다른 결을 만들어 냈다. 작품을 바라보던 시선은 자연스레 바깥 풍경으로 흘러가고, 다시 안쪽으로 되돌아왔다. 이는 미술관이 단순히 작품을 두는 장소가 아니라, 관람객의 경험을 확장하는 무대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벽에는 에가미 에츠(Egami Etsu)라는 젊은 작가의 회화가 있었다. 역동적인 평행선들이 밝은 색채를 내뿜으며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순간 작가로서 의문이 들었다. 전통적으로 작가들은 외부와 차단된 화이트 큐브(White Cube)를 선호해 왔다. 흰 벽과 아무 장식 없는 공간은 작품에만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풍경과 작품이 경쟁해야 한다. 자칫 산만해 보일 수 있는 불리해 보이는 조건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왜 이 전시관을 선택했을까?

작가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사는 경험을 토대로, 언어로는 완전히 전해지지 않는 감각들을 화면에 옮겨왔다. 작가의 회화는 서로 다른 언어가 단순한 충돌이 아니라, ‘평행선’을 유지한 채 공존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억지로 섞이지 않고도 함께 존재할 수 있는 풍경. 고분의 풍경과 회화의 색채가 서로를 덮지 않고, 함께 머무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단지 전시 장소를 빌리는 차원을 넘어, 자신의 문제의식과 오아르 미술관의 독특한 구조가 맞닿아 있는 지점을 발견했을 것이다. 즉 그녀가 생각하는 다층적이고 열린 공존의 가능성을 이 미술관에서 실험해 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분과 현대 미술, 작품과 풍경이 서로 한 화면에 호흡하듯 공존하는 순간, 그것은 일반적인 전시를 넘어선다. 오래된 과거의 시간과 현재가 나란히 한자리에 겹쳐 울림을 만들고, 관람객들은 그 울림 속에서 새로운 감각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로 다른 시간과 경험, 사람들이 나란히 설 때 삶은 깊이를 얻는다. 공존은 타인을 인정하는 일이자,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리고 그 거울은 결국,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지탱하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진리이다.

장훈화 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