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83)고인도 날 못 보고-이황(1501~1570)

2025-09-19     차형석 기자

한반도를 넘어선 우리 문화와 뿌리

‘고인을 못 봐도 예던 길 앞에 있네
예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예고 어쩔꼬’
<도산십이곡>


전혀 올 뜻이 없어 뵈던 가을이 절기에 맞춰 성큼 다가왔다. 오곡이 무르익는다.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 불고, 한낮에는 아직 따끈따끈한 햇살에 곡식과 과일이 익어간다. 긴 겨울의 양식이 온 들판에서 익어가니 바람이 향기롭다. 어디 신선의 세상이 따로 있겠는가. 여기 이 땅을 신선도 탐하지 않았을까.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아프리카 초원을 떠나온 지 600만년 끝에 여기 한반도를 찾았을까.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고 천산산맥을 넘어 이 땅에 닿기까지의 고난은 짐작이 간다. 전쟁을 치르고 가뭄과 홍수를 피해, 해 뜨는 곳 동쪽으로 동으로 이 땅에까지 왔던 것이다.

땅은 기름지고 계절은 분명하고 산이 높아 계곡이 깊으니 물이 맑아서 좋고, 백두대간을 타고 산맥이 벋어가니 천년의 요새이며 굽이굽이 강이 흐르니 이 또한 천년의 해자이다. 삼면이 바다로 열려있으니 바닷길을 따라 무역을 해서 국가도 개인도 풍성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던것이다. 또 수산물을 마음대로 잡고, 캐는 어로 활동으로 부족함 없는 생산지였고 모두가 생산자였다.

우리는 수만 년 동안 한 핏줄 한 민족으로 그렇게 살아왔기에 서양인들이 우리를 보면 그 애가 그 애 같고 그 사람이 그 사람 같다고도 한다.

단군 할아버지께서 단군조선을 개국하여, 한 자손으로 지금까지 가지를 뻗어 살아온 한 식구와 같은 민족이다.

고인을 못 뵈어도 우리 앞에 길이 열려있고 부모님이 계시고 내가 있으니, 단군 할아버지가 보이는 것이다. 내 몸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요, 땅에서 불끈 솟아 나온 게 아니다. 뿌리는 분명 있는 게 분명하니 내 존재 속에서 단군 할아버지를 보는 것이다. 고조선, 고구려, 신라, 백제, 발해, 고려의 그 빛난 문화와 그 넓은 땅을 기억한다. 우리 문화와 생명의 뿌리는 한반도에 갖혀 있는 게 아님을, 그 광활한 동북아시아, 서북유라시아가 우리의 문화권역임을 어찌 잊고 살 수 있겠는가.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