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4장 / 의병장 윤홍명과 이눌(52)
“이제 마을로 내려가서 같이 사는 게 당연합니다. 언제까지 여기서 혼자 살 수는 없잖아요. 물론 위험은 따르겠지만 어차피 각오한 일이잖아요?”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안전한 곳에서 둘만의 시간에 익숙해진 그녀이기에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 두려웠다. 마을로 내려가는 순간 사람들의 이목 때문이라도 지금처럼 가까운 공간에서 그와 함께 지낼 수가 없을 것이다. 자신은 엄연한 반가의 과수이고, 천동은 천출인 백정의 자식이기에 조선의 국법이 둘의 관계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천동은 그녀를 계속해서 설득했다. 이제 논까지 마련한 마당에 그들이 언제까지 이 동굴집에서 세상과 단절하며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누님, 내키지 않겠지만 같이 내려가세요. 마을에 내려가더라도 제가 누님을 지켜드리겠습니다.”
“동생의 마음은 알지만 동생도 모르는 게 있어. 양반들이 나를 탐한다면 동생이 무슨 수로 나를 지켜줄 거야? 동생의 검술이라는 것도 같은 신분의 사람들에게는 유용하게 쓰이겠지만, 지금의 조선땅에서 양반들로부터 칼로 나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야.”
말을 하면서도 국화는 서럽게 울었다. 그래도 이 동굴에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는데, 앞으로 다가올 자신의 운명이 너무도 두려웠던 것이다.
누이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천동은 그녀를 설득할 마땅한 구실을 찾지 못했다. 그녀의 말대로 세상과 단절하면 칼만으로도 그녀를 지킬 수 있겠지만 세상 속으로 나가면 얘기가 다르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혼자서 아무리 칼을 잘 쓴들 세상 전체를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보다 더 무모한 짓이다. 비록 아녀자지만 그런 것을 아는 국화이기에 산을 내려가고 싶지가 않다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동생만 내려가. 나는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저 아래 세상에 내려가서 살 자신이 없어. 여기서야 동생만 있으면 무서울 게 없어. 죽더라도 여기서 죽을래. 제발 동생 혼자 내려가.”
국화 누이의 마음이 예상 외로 강경해서 당장 설득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느낀 천동은 일보 후퇴했다.
“알았어요. 그 문제는 천천히 생각하기로 해요. 나 배고픈데 먹을 것은 있어요?”
“요즘 산나물도 지천이고, 또 운 좋게 꿩알도 몇 개 주워왔어. 산마늘국에 넣어서 끓여 먹으면 맛있을 거야.”
식사 후에 천동은 다시 한 번 다짐하듯이 말했다.
“누님, 나 믿지요? 무조건 믿어요. 내가 반드시 지켜줄게요.”
국화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튿날 천동은 다시 혼자 마을로 내려갔다. 당분간은 그렇게 혼자서 마을을 오갈 생각이었다.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