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자원 화재 울산 행정서비스도 ‘불똥’

2025-09-29     경상일보

지난 26일 밤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에서 발생한 화재는 대한민국 디지털 행정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무정전 전원장치(UPS) 배터리를 교체하던 중 불꽃이 튀며 시작된 화재가 순식간에 국가 전산망의 심장부를 마비시켰다. 정부24, 국민신문고, 전자관보, 공직자통합메일 등 90여개 시스템이 멈췄고, 전국 행정 서비스가 동시에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로 국가적 재난이다.

울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자관보, 계약입찰, 민원신청, 정보공개 등 핵심 서비스가 멈추며 시민 불편이 이어졌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접속이 불가능해 교직원 출결관리와 학사 운영이 전면 중단됐다. 각종 공문 발송과 결재가 지연됐고, 인증서 연계 시스템이 모두 멈춰섰다. 시민들은 무인민원발급기와 모바일 신분증을 이용하지 못했고, 우체국 계좌 송금까지 차단되는 등 생활 곳곳에서 차질을 빚었다. 특히 취약계층이나 고령층은 대체 수단을 찾기조차 어려워 더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사고가 금요일 밤에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주말에는 학교 수업이 없고, 민원 창구도 닫혀 있어 즉각적인 혼란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문제다. 평일이 시작되면서 중단됐던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면,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피해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여전히 일부 시스템은 복구 시점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시민과 공직자의 피로도는 누적되고,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번 사고의 본질은 단순히 시스템이 꺼졌다는 데 있지 않다. 국가 핵심 전산센터에서 기본적인 전력설비 관리조차 허술했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더구나 전국 행정 서비스가 특정 거점에 지나치게 집적된 구조라는 사실은 재난 대응의 취약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특정 시설이 물리적으로 훼손될 경우 전국 단위의 서비스가 동시에 멈춘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구조다. 정부가 앞장서 추진해온 디지털 전환이 오히려 대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정부는 피해 복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동시에 대체 시스템으로 자동 전환되는 이중화 체계, 백업 인프라의 분산 배치, 위기관리 매뉴얼 정비 등 근본적인 구조 개선에 나서야 한다. 울산을 비롯한 각 지자체도 중앙 시스템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 서버와 백업 체계를 강화하며 독자적 대응 능력을 갖춰야 한다. 디지털은 행정의 기반이자 국민 생활의 뼈대다. 시스템이 멈추면 정부 기능도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