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4장 / 의병장 윤홍명과 이눌(55)

2025-09-30     차형석 기자

그가 생각하기에는 자신이 곧 조선이고, 조선이 곧 자신이었기 때문에 설사 백성의 절반이 죽는다고 해도 자신과 왕실만 유지된다면 문제될 게 없는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 조선왕조의 붕괴를 막는데 목숨을 걸었고, 백성들에게는 훈육을 통해 왕실을 위해서 싸우다 죽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하며 그것이 백성 된 자의 도리라고 가르쳤다.

맹자는 ‘구체(拘彘) 식인식이부지검(食人食而不知檢)하며 도유아표이부지발(塗有餓殍 而不知發)하고 인사즉왈(人死則曰), 비아야(非我也)라 하나니 시하이어자인이살지왈(是何異於刺人而殺之曰), 비아야(非我也)라 병야(兵也)리오. 개와 돼지가 사람이 먹어야 할 음식을 먹는데도 이를 막지 못하고, 길거리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는데도 창고를 열어 구제할 줄 모르고, 백성들이 굶어 죽어도 내 탓이 아니라 흉년 때문이라고 한다면 사람을 찔러 죽이고도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 칼이 죽인 것이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말했다.

민심이 임금을 외면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왜군에 대항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은 왜군들이 한 술 더 뜨는 인면수심의 잔인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전쟁 초기에 왜군들은 양민들을 해치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악귀로 변하기 시작했다. 눈에 띄는 백성들은 무조건 죽이고, 무수히 많은 도공과 기술자들은 산 채로 왜국으로 끌고 갔다. 그런가 하면 민가를 약탈하기도 하고, 아녀자들은 겁탈한 후에 아이들과 함께 노예로 팔아먹기 위해서 끌고 갔다. 또한 그들은 전쟁과 관계가 없는 조선의 백성들을 끌고 가서 조선군과의 전투에서 화살 받이로 사용하기도 했다. 조선의 노비나 천민들 중 일부는 처음에 왜군들을 환영하기까지 했지만, 그들의 행태를 보고 조선의 양반들보다도 더한 놈들이라는 생각에서 자발적으로 의병에 가담하고, 없는 살림살이에 곡식까지 바쳐가며 왜군들로부터 이 땅을 지키는 관군들의 큰 힘이 돼 주었다.

그해 여름은 온몸에 땀띠를 만들어 낼 만큼 무더웠다. 천동과 국화도 땀띠를 달고 살았는데, 미리 심어놓은 오이를 따서 자른 후에 땀띠가 난 곳에 바르면 효과가 있었다. 그렇지만 여름 한철을 목욕도 하지 않고 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국화에게는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반가의 안방마님이었던 신분 때문에 마을 아낙들과 어울리지도 못해서, 그들이 멱을 감을 때 따라갈 수가 없었다.

보름 동안 고민하다가 그녀는 마침내 천동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협조를 부탁했다. 그녀가 집 근처에 있는 계곡물에서 멱을 감을 때 망을 봐달라고 했다. 천동은 그러겠노라고 약속하고 둘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매봉산과 동화산 사이에 북쪽으로 트여있는 골짜기의 날개배이가 국화가 말한 목적지다.

“정말 같이 가주는 거지?”

국화는 다짐을 받을 요량으로 재차 물었다.

“알았으니 채비나 하세요.”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