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4장 / 의병장 윤홍명과 이눌(57)

2025-10-02     차형석 기자

“누님, 밖에 계시지 말고 들어가세요. 요새 이상한 놈들이 많아요.”

“설마, 알았어. 들어갈게.”

여인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김 초시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분명히 저 천한 백정 놈이 젊은 아낙을 보고 누님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그 아낙은 기품이 있어 보였다. 절대로 백정 놈들과 어울릴 여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다.

‘잘하면 꿩 먹고 알 먹고 일거양득이 될 거야.’

김 초시는 다시 기분이 좋아져서 싱글벙글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주인님, 다녀오셨습니까?”

“야 이놈아, 대감마님이라고 부르라 하지 않았더냐?”

“알겠습니다. 대감마님!”

“아, 그리고 힘깨나 쓰는 한량 두 명 정도 알아봐.”

“대감마님! 이 난리 통에 한량을 어디 가서 구합니까?”

“이놈이, 알아보라면 알아보지 말이 많아. 냉큼 움직여.”

김 초시의 지시를 받은 하인은 투덜거리며 대문을 나섰다. 주인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어서 나서기는 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근동의 힘깨나 쓰는 패거리라면 송내의 천동이 패거리만한 자들도 없을 것 같았다. 송내로 간 꺽쇠는 천동이 패거리를 만나서 자초지종을 말했다. 천동은 김 초시가 왜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짐작이 갔다. 장정 두 명 정도라면 할 짓이라고는 아녀자 보쌈밖에 없었다. 천동은 어제 잡은 장어를 꺼내서 그가 보는 앞에서 솥에다 넣고 푹 고았다. 그것을 몽땅 김 초시의 하인인 꺽쇠에게 주며 앞으로도 김 초시 어른의 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꺽쇠는 인근 동리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울산이나 경주의 웬만한 왈짜패들도 천동에게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러마고 약속했다.

“꺽쇠 형님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장어를 대령하겠습니다. 필요하시면 항시 주저하지 마시고 들르세요. 친형님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럽니다.”

천동의 혓바닥이 참기름을 바른 양 잘도 굴러갔다. 이제 그는 예전의 어리숙하고 어눌하기만 했던 백정의 자식이 아니었다. 세상과 소통하고 때로는 적의 목숨을 끊는 냉정함을 익히면서 절제와 융통성을 배웠다.

천동은 꺽쇠를 통해서 초시 김응석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김 초시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며 그가 꾸미는 음모에 대응해 나갔다. 그로부터 사흘째 되던 날, 국화가 기거하던 방에서 축시에 약간의 기척이 들렸다. 그러나 천동은 잠시 귀를 세우다가 이내 다시 잠을 잤다.

다음 날 김 초시는 자신의 계획이 사전에 천동이에게 새어나간 것을 눈치 챘다. 하인인 꺽쇠를 앉혀놓고 몽둥이로 위협하며 바른말을 대라고 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꺽쇠는 한사코 부인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관계로 김 초시도 더는 어쩔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러다가 자신의 주요한 재산목록 중 하나인 꺽쇠가 다치거나 죽으면 자신만 손해였고, 자신의 시중을 드는 유일한 종놈이기에 스스로 화를 삭이면서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찾으려고 몇 날 며칠을 방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그러고는 며칠 뒤에 꺽쇠에게 잠시 다녀오겠노라고 일러두고 혼자서 집을 나섰다.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