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태의 인생수업(14)]‘모범택시’ 우리가 정의를 갈망하는 이유
SBS 드라마 ‘모범택시’는 단순한 범죄 액션물이 아니다. 최고 시청률 21%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OTT 플랫폼에서는 국내 1위, 해외 16개국 1위를 차지하며 글로벌 인기를 입증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는 단순한 복수극의 쾌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 드라마는 ‘사회 정의’에 대한 대중의 깊은 열망을 대리 충족시키는 서사로, 시청자들에게 강한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모범택시’의 이야기는 ‘법이 멈춘 자리’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김도기와 무지개 운수 팀은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간 가해자들을 찾아 피해자를 대신해 응징한다. 염전 노예 사건, 디지털 성범죄, 보이스피싱, 인신매매, 학교폭력 등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들이 그대로 등장한다.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 속 세계에서 현실에서는 불가능했던 응징이 가능해지는 경험을 하며, 억눌렸던 분노가 해소되는 듯한 위로와 해방감을 얻는다.
사람들이 ‘모범택시’에 열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가진 자들의 비상식, 흉악범의 솜방망이 처벌, 불평등한 사회 구조는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분노와 무력감을 남긴다.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이는 억눌린 감정이 대리 해소되는 과정이다. 피해자의 억울함이 풀리고, 가해자가 응징당하는 장면에서 시청자들은 잠시나마 정의가 회복되는 세상을 경험한다.
그러나 ‘모범택시’는 단순한 복수극으로 머물지 않는다. 이 드라마는 묻는다. 정의란 무엇인가? 법과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개인은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는가? 사적 복수는 정의일까, 아니면 또 다른 폭력일까? 드라마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시청자들이 그 불편한 질문과 마주하도록 만든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가. 법과 제도에만 기대어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행동해 세상을 바꿀 것인가. 삶은 언제나 공정하지 않으며, 정의는 종종 더디게 온다.
‘모범택시’가 폭발적인 공감을 얻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것은 현실에서 좌절된 정의를 상상 속에서라도 회복하려는 인간의 집단적 열망이다. 정의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하지만 현실은 종종 그 믿음을 배신한다. 이 드라마는 바로 그 상처 난 자리를 어루만지며, 우리가 잃어버린 정의에 대한 믿음을 잠시나마 되살린다.
정의는 기다림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모범택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법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부당함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으며,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태도다.
그래서 ‘모범택시’는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정의를 갈망하고 있다는 증거이자, 그 갈망을 비추는 우리 시대의 거울이다.
정안태 '오늘하루 행복수업' 저자·울산안전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