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박준 ‘지각’

2025-10-13     차형석 기자

나의 슬픔은 나무 밑에 있고
나의 미안은 호숫가에 있고
나의 잘못은 비탈길에 있다

나는 나무 밑에서 미안해하고
나는 호숫가에서 뉘우치며
나는 비탈에서 슬퍼한다

이르게 찾아오는 것은
한결같이 늦은 일이 된다


제때 대처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

학교에 늦게 간 적이 있다. 이미 수업이 시작되어 뒷문을 열고 선생님께 목례를 한 뒤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며 걸어갈 때, 일제히 쏠리던 시선들. 그 시선을 감수하고 자리에 앉으면, 안도감에 깊은숨을 쉬게 된다. 지각이라도 결석보다는 낫다는 깨달음.

시에서 화자는 자신의 슬픔, 미안함, 잘못을 언급하며 그 감정들이 나무 밑, 호숫가, 비탈길에 있다고 말한다. 그곳은 내면을 성찰하거나 반추하며 응시하거나 실수하고 미끄러지던 곳이라는 공간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장소이다. 하지만 2연에서는 그 감정의 처리와 장소가 교차하면서 반전이 일어난다. 제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일에 대해 시간이 흐른 뒤 뒤늦은 아쉬움과 후회, 뉘우침, 그러니까 지각(遲刻)된 깨달음이 밀려온다.

하지만 ‘늦었다’는 깨달음은 지각(知覺)된 인식이기도 하다. 뒤늦은 지각(遲刻)에 대한 지각(知覺)은 오히려 본질적 삶에 대한 성찰과 통찰을 보여준다. 이처럼 ‘지각’은 중의적 의미를 통해 시적 깊이를 더해주는 낱말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지만, 그냥 포기하느니 무어라도 하는 게 낫다는 걸 살아가면서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