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내의 초록지문(22)]나뭇잎 경전
일주문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이 시작된다. 1.5㎞의 길이 모두 계단이라 한다. 초입부터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찬 듯 걸음이 무겁다. 숨이 막혀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다.
앞서 걷는 어른이 발걸음마다 불경을 외운다. 발목에 매달린 기도는 어떤 내용일까. 이맘때면 기도가 많다. 곡식은 잘 여물기를, 수험생은 좋은 소식을, 누군가는 평안을 빈다. 마당의 고추가 붉게 물드는 것을 보며, 첫 회사 생활이 마라 맛이지 않기를 바라는 사회 초년생도 있을 것이다.
멀리서 은사시나무잎이 흔들린다. 잠깐씩 비치는 햇살에 잎이 은빛으로 반짝인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타르초처럼 보인다.
티베트 사람들은 성스러운 곳마다 오색 깃발을 단다. 경문이 빼곡히 적힌 타르초다. 그들은 바람이 깃발을 흔드는 소리를 경전 읽는 것이라 여긴다. 오색 깃발이 펄럭일 때마다 기도가 신에게 닿고, 경문이 온 누리에 퍼져 세상의 모든 존재가 해탈에 이르기를 바란다. 바람은 오래된 기도를 나른다.
나뭇잎 타르초가 날린다. 바람이 읽은 기도가 번진다. 봄의 싹에서 여름의 무성함을 지나 붉게 물드는 동안, 잎들은 제 나름의 경문을 써왔다. 조만간 땅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긴 겨울이 지나면 새순도 올리겠지. 잎사귀 하나하나가 기록한 생명 순환의 기도문이 흩어진다. 자연이 올리는 끝없는 독경이다.
막바지 오르막이다. 마지막 계단에 올라서자 바위에 새겨진 거대한 불상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마음을 다해 무언가를 갈구하는 이들이 있다. 기도에 기도를 쌓는 사람들. 어쩌면 우리가 서로의 삶에 닿고 흔드는 일도 관계라는 한 문장의 경전일지 모르겠다.
오른 길을 되짚어 내려가는 시간, 세상의 모든 타르초가 펄럭인다. 나뭇잎 경전이 날린다. 바람이 가는 길 끝에서 어떤 염원이든 당신에게 닿기를. 누군가 쌓은 작은 석탑 위에 내 기도를 함께 얹어둔다.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