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박경희 ‘산이 사라졌다’
무릎 수술로 한 계절 병원 신세 지고 온
석남이네 할머니
산이 있던 자리 멍하니 보고 있다
가만히 앉아 있던
산이 사라졌다
여주댁 이사 가고 산 팔았다더니
그새 사라지고 없다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얘기를 귓등으로 들었다
고사리 끊으러 다녔던
산이 사라졌다
산벚나무가 유난히 많던 산이
호랑지빠귀가 울던 산이
기둥에 걸어놓은 거울 속
산이 사라졌다
당신도 곧 사라질 것처럼 여러날째
빈 하늘만 보고 있다
평생 더불어 살아온 산을 잃은 상실감
산이 사라졌다! 큰 나무나 집이나, 도로 정도가 아니고 산이 그대로 사라지다니. 시에서는 골프장을 만들려고 산을 없애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언덕이나 초록 잔디 정도는 남아있을 텐데, 내 경우는 산이 아예 통째로 사라진 걸 보았다. 바로 산을 밀어버리고 공단이 들어선 것. 그 산도 산벚나무가 곱고, 호랑지빠귀가 울었고, 무엇보다 늦봄에 고사리를 꺾으러 다녔다. 이제 조립식 건물이 빼곡한 공단이 산이었다는 건 짐작조차 어렵다. 그래서 이 시는 좀 더 공감하며 읽었다.
하지만 시에서 상실의 아픔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평생 산과 더불어 살아온 석남네 할머니의 모습 때문이다.
쇠락해진 몸으로 고향에 돌아왔을 때 익숙했던 산이 졸지에 사라져버린 일은 삶 전체를 뒤흔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개발과 자본의 논리에 할머니는 소외되었다. “기둥에 걸어놓은 거울 속 산”이란 할머니를 꼭 닮은, 평생을 할머니와 함께 한 산이라는 의미이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가 아니라, 사람은 변함없되 산천은 사라져버린 기막힘. 그 망연자실함이 “여러 날째 빈 하늘만 보고 있다”라는 구절에서 아프게 느껴진다.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