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영의 컬러톡!톡!(45)]색을 얻고, 색을 잃다
색은 우리 삶의 가장 직관적인 언어이다. 하지만 이 풍요로운 색채의 세계가 모두에게 똑같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삶의 시작인 신생아와 인생의 후반기인 고령자에게는 놀랍게도 색채 인지에 있어 유사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색을 인식하는 과정은 과학적이고 복잡한 시스템을 따른다.
눈 속에 있는 카메라 필름과 같은 망막에는 두 가지 중요한 시각 세포가 있다. 어두운 곳에서 명암을 구분하는 간상세포와 밝은 곳에서 색을 구분하는 원뿔세포이다. 원뿔세포는 빛의 파장을 감지하며, 우리가 흔히 아는 빨강, 초록, 파랑에 반응하는 세 종류의 세포가 조합되어 수백만 가지 색을 인식하게 한다.
신생아의 시력은 약 0.05 정도로 매우 낮으며,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거리도 20~30㎝ 이내로 제한적이다. 망막 중심부의 원뿔세포 밀도가 낮고, 특히 파란색을 감지하는 세포의 발달이 가장 느리다. 그래서 신생아는 복잡한 색채 정보를 처리하지 못하고, 강한 명암대비를 통해 형태를 인지하는 훈련부터 시작한다. 흔히 사용하는 흑백 모빌이 신생아 시각 발달에 필수적인 이유다. 신생아는 생후 4~6개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대부분의 색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신생아가 미성숙으로 인한 색채 인지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고령자들은 노화로 인해 색채가 퇴색되는 경험을 한다. 색 인지 능력을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눈 속의 수정체 황변화 현상이다. 나이가 들면 수정체는 노란색 필터처럼 변색되어 파란색, 남색, 보라색 계열의 빛을 흡수하거나 차단해 버린다. 세상이 노르스름하게 보이고, 파란색과 검은색을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계단이나 표지판 인식 문제로 이어져 안전과도 직결된다.
신생아가 ‘색을 얻는’ 과정의 어려움을 겪는다면, 고령자는 ‘색을 잃는’ 과정의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두 시기 모두 복잡하고 미묘한 색채보다 명확한 대비를 원하며 파란색 인지가 어렵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신생아는 흑백에서 출발하여 고채도의 원색으로 점차 난이도를 높여 주어야 한다. 이는 미발달된 시각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자극하여 신경 연결을 촉진한다. 노인은 낮은 채도나 명도가 유사한 색의 사용은 피하고, 높은 명도 대비와 파장이 긴 빨강 계열의 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안전 손잡이나 계단 끝에 노란색이나 빨간색 테이프를 사용하는 것은 노화로 인한 시각적 한계를 극복하는 실용적인 색채 사용법이 된다.
인생의 시작과 끝에서, 인간의 눈은 각자의 방식으로 색채의 한계와 마주한다. 우리가 만드는 공간과 환경이 이러한 생물학적 특성을 이해하고 연령에 맞는 색채를 적용할 때, 비로소 더 안전하고 인간적인 세상이 될 수 있다. 색은 단순히 아름다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생존이고, 배려이며, 공존의 언어다.
신선영 울산대학교 교수·색채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