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AI를 설계하고 세계가 경험하는 울산의 도전

2025-10-23     경상일보

울산은 지금 새로운 전환의 길목에 서 있다. 산업수도의 이미지를 넘어 인공지능의 수도로 나아가려는 도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AI 도시’의 출발이 단순히 기술을 유치하고 데이터센터를 확충하는 것에 머문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산업 인프라 구축에 불과하다.

AI 수도 울산의 진정한 출발은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전략을 디자인하고, 그것을 시민과 산업의 브랜드로 발전시키는 일에서 시작된다.

경제학의 개념인 ‘스마일 커브(Smile Curve)’는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기에 좋은 예다. 하나의 제품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곡선으로 표현하면, 가운데의 제조 단계보다 양쪽 끝에 위치한 기획·디자인과 마케팅·브랜딩에서 더 큰 부가가치가 발생한다. 즉, 기술을 ‘만드는 일’보다 기술을 어떻게 설계하고 경험하게 하느냐가 산업의 주도권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세계적인 기업 애플의 제품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 기획과 디자인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생산은 중국의 폭스콘 공장에서 이뤄진다. 폭스콘은 전 세계 제조를 책임지지만, 시장의 수익과 브랜드 가치는 대부분 애플이 가져간다. 이 구조는 기술의 생산보다 기술의 의미를 디자인하는 능력이 진정한 경쟁력임을 보여준다.

최근 울산이 아마존의 AI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며 지역 산업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 시설이 단순히 글로벌 기업의 서버를 유지·관리하는 조립 중심의 산업 구조로 머문다면, 울산은 또 다른 ‘AI의 폭스콘’이 될 수 있다.

즉, 첨단 인프라는 확보했지만 산업의 주도권은 외부로 흘러가는 구조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울산이 기술의 OEM 도시가 아니라, AI를 직접 기획하고 디자인하며 브랜드화하는 도시로 거듭날 가장 좋은 기회다.

AI 산업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기획과 경험이다. AI 수도를 계획하는 지금, 울산이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떤 AI 산업을 디자인할 것인가’ ‘어떤 상품과 서비스를 브랜드화할 것인가’, 그리고 ‘시민이 AI를 어떻게 체험하고 소비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AI 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기술이 구현되는 공간과 경험은 반드시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디자인과 공간 전략이 중요하다. 기술을 시각화하고 시민이 체험할 수 있도록 공간화할 때, 울산은 단순한 기술 도시가 아니라 AI가 살아 움직이는 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다.

AI는 분명 새로운 기술이자 새로운 경험이다. 그만큼 AI를 기획하고 설계하며 디자인하는 과정 또한 이전과는 다른 융합적 상상력과 도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공학과 예술, 데이터와 공간, 산업과 문화가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AI는 기술을 넘어 울산의 정체성과 미래 비전을 담는 언어가 된다. AI는 도시의 새로운 산업과 문화를 창의적으로 설계하고 진화하게 만드는 창의적 동력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AI 논의는 GPU 확보, 데이터센터 확장 등 기술 경쟁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스마일 커브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는 가치사슬의 중간 단계에 불과하다. 울산이 진정한 AI 수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앞단인 기획·디자인, 그리고 뒷단인 브랜딩·경험·공간을 연결해야 한다. 그래야 기술이 도시의 문화가 되고, 산업이 시민의 삶 속으로 녹아들 수 있다.

울산은 산업·에너지·모빌리티의 강점을 가진 도시다. 여기에 디자인과 브랜딩의 사고를 결합한다면, 기술 중심에서 경험 중심의 도시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AI 기술을 보유하는 것을 넘어, 시민이 직접 보고·느끼고·사용할 수 있는 AI 공간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것이 울산이 AI 수도로 성장하기 위한 다음 단계다.

스마일 커브의 양 끝을 채우는 도시, “Designed by Ulsan. Experienced by the World.” 울산이 기술을 넘어 AI 산업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며, 그 경험을 세계가 공유하는 순간, 비로소 ‘AI 수도 울산’의 비전은 기술이 아닌 창의와 브랜드의 힘으로 완성될 것이다.

김범관 울산대학교 스마트도시융합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