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小공원 산책하기](16)연 많은 팽나무-앞들어린이공원

2025-10-23     차형석 기자

글자를 보면서도 무서운 건 습관이다
그대로 읽지 않고 앞들을 앞뜰로
몇 번을 고쳐 읽으며 자기 방식 고수한다

숨은 뜰 발견하고 비밀의 화원으로
칭한다 감탄한다 혼자만의 시간이다
팔손이 부여잡고서 잎 갈래 세어본다

칠엽수 잎 갈래는 일곱 개 맞는데
이것은 다섯 개요 일곱 개요 아홉 개다
이름과 어긋난 이유 팽나무에게 물어볼까

장현공원으로 알고 간 곳의 이름이 앞들어린이공원으로 돼 있다. ‘앞들’을 자꾸 ‘앞뜰’로 발음하고 싶어진다. 새롭게 조성된 공원은 에일린의뜰2차아파트와 골드클래스 사이에 있다. 인도와 접한 공원의 왼편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이 있고 오른편에는 운동기구와 둥그런 화단이 있다.

늘 습관적으로 오른편을 먼저 둘러보았지만 여기서는 완전히 반대였다. 왼편에서 시선을 붙잡는 팽나무 때문이었다. 얼마나 잘 자랐던지 멋진 성 하나를 만난 기분이었다. 좌우 그리고 중앙으로 가지를 골고루 뻗어 한쪽으로 치우침 없는 안정된 균형미를 보여 주었다.

사람들은 흔히 좋은 풍경을 보거나 감탄을 할 때 장관을 이룬다는 말을 한다. 나도 처음에는 ‘정말 장관이다’라는 말을 쏟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흔한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멋진 성 하나, 상상도 못한 성, 상상을 초월한 성,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성이라는 말을 갖다 붙였다. 이런 모습을 갖추기까지 팽나무에게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이다. 팽나무 원줄기의 삼 분의 일 지점에 둥그렇게 부목을 대 놓고 그것을 고정하기 위한 지지대와 쇠줄들이 연결돼 있었다. 팽나무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무를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은 것으로 보였다.

공원은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안쪽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꼭 비밀의 화원을 만난 기분, 숨겨진 별천지를 걷는 기분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는 지점부터 양쪽으로 다양한 나무들이 식재돼 있어 보는 눈이 즐거웠다. 안으로 난 산책로는 계절마다 어느 길로 갈지를 선택할 수 있게 돼 있었다. 더운 날씨에는 그늘이 돼 주는 오솔길로 추울 때는 넓은 길로 햇살을 받으면서 걸으면 안성맞춤일 것 같았다.

양쪽에 아파트를 두고 있는 공원은 아파트와 공원을 직접 연결하는 길들이 중간중간에 많이 나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얼마나 다양한 나무들이 많던지 나무와 눈팅하는 시간도 많이 걸렸다. 모르는 식물이 많아 일일이 찍어서 인터넷 검색을 하니 바로 이름을 말해주는 것도 있었지만 유사식물 검색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한 잎이 여러 갈래로 나뉜 것을 보고 또 검색을 해 보니 ‘팔손이’라고 돼 있다. 잎이 여덟 개로 나뉘어야 맞을 것 같은데 세어보니 다섯 개 일곱 개 여덟 개 아홉 개로 모두 달랐다. ‘팔손이’라는 식물명이 아리송했다.

식물들 사이로 걷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가까이 다가가 잎도 만져 보고 꽃향기도 맡아본다. 식물을 대할 때 ‘싫다, 좋다’라는 구분이 없었다. 그저 좋았다. 여기를 왕복하는 동안 그런 편견이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사람을 만날 때는 ‘내 취향이다, 아니다’로 이분법을 만들지만 여기서는 그런 마음이 전혀 일지 않는다. 이렇게 저렇게 생겼구나 하는 식으로 감상만 하면 끝이었다.

그동안 알고 있던 상식과는 조금 어긋난 앞들어린이공원에서 많은 매력을 느꼈다. 이 공원의 주인공인 팽나무에게 앞으로도 계속 늠름하게 서 있어 달라는 부탁을 하며 나왔다.

글·사진=박서정 수필가·소설가